“나는 결혼을 했고 행복하다. 이젠 초록창이나 파란창에서 그분의 이름을 연관 검색어에서 없애 줬으면 좋겠다. 그분도 (나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올초 방송인 하하는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언급한 초록창과 파란창은 국내 1, 2위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이다.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20여개 연관 검색어가 함께 뜨는데, 전 여자친구였던 한 방송인의 이름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신혼인 하하 부부나 해당 방송인에게 포털에 남아 있는 상대방의 흔적은 분명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이른 바‘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자신과 관련된 정보 가운데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내용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사실 온라인에 무심코 올린 글이나 사진, 언론에 보도된 관련 기사 등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 고통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혼 성형 전과 등 감추고 싶은 개인사가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고, 개인정보를 파헤치는 ‘신상털기’의 엉뚱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한번 노출된 정보는 ‘유통기한’도 없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알 권리’ 못지 않게 ‘알려지지 않을 권리’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싹트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문제를 논쟁의 수면 위로 끄집어낸 계기는 지난 2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 및 정보통신망법 일부 개정안.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용자가 포털 등에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 있고, 이를 요청 받은 업체는 확인 절차를 거쳐 즉시 삭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글을 올린 사람이 저작물의 복제 및 전송중단을 요구할 수 있지만, 삭제를 요청할 근거는 없다. 정보통신망법 역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의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삭제요청을 할 수 있다. 사실상 업체에게 삭제 결정권이 주어져 있는 상황이라, 이번 개정안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트위터, 페이스 북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개정안에 적극 찬성하는 측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밝혀지길 꺼려하는 신상까지 무분별하게 링크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삭제요구 권한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네이버 다음 구글 등 대형 포털들은 이미 작성자가 원하면 삭제조치를 하는 만큼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까지 포함하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개정안은 게시자가 요구하면 예외 없이 삭제하도록 해, 공공영역에서 악용의 여지가 있다는 반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예컨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선거공약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선거 뒤 바로 포털에 삭제요청을 하는 식으로 자의적으로 정보를 삭제한다면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선진국에선 논의가 더 활발한 편이다. 지난해 1월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발표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잊혀질 권리’의 범위를 자신이 작성한 정보는 물론, 링크 및 복사, 제3자가 올린 글까지 포괄적으로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법적 기준도 하나씩 생겨나는 상황이다. 지난 1993년 이탈리아의 한 정치인은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무죄로 판명된 뒤, 기사 검색에 자신의 체포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법원에 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법원은 “검색결과에 체포와 무죄 뉴스가 함께 링크되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절충점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에 대한 개념 및 허용 범위 등이 정립되지 않은 나라가 대다수인게 현실이다. 또 글로벌 정보통신(IT)업체들이 이해 관계 때문에 소극적인 점도 문제다. 올 초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EU 정책결정자들을 대상으로 개인정보보호정책 완화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 업체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어, 국가별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IT업계 전문가는 “개인의 잊혀질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모여 관련법 마련 및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인 만큼 초국가적 합의 역시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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