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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정치적 기획… 누군가엔 개선, 누군가엔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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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정치적 기획… 누군가엔 개선, 누군가엔 개악

입력
2013.04.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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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경제개발 없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그에 따른 희생과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원제: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은 지난 수백년 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를 움직여 온 키워드 '개발'을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심층 분석한 비판서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라는 부제처럼 비판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나 무조건적인 비판론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통합 주제인 개발의 이론과 실제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살펴보고 각종 대항운동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한 권의 개발 통사에 가깝다.

1996년 초판이 나온 이후 2012년 5판까지 나올 정도로 개발 분야의 손꼽히는 저작이다. 저자는 미국 코넬대 교수로 국제 개발 분야의 권위자로 개발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접근한다. 전 지구적 개발은 국제 정세와 주변 상황에 편승한 인위적 노력이었으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라 정치적 기획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의 개발에 대해 경제 개발로 국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으려 했던 개발 프로젝트 시대(1940~70년대), '시장은 선, 국가는 악'이라는 인식하에 민영화 위주로 진행된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1970~2000년대), 두 시대 사이의 긴장으로 출현한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시대(2000년대 이후)로 분류한다.

세상은 끊임없는 개발로 나아가고 있으나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착한 개발은 없다. 세계 인구 중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세계 소득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만성 영양 실조에 신음하는 현실에도 개발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연평균 5~8%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인도에서는 아직도 5세 미만 어린이 절반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초국가적인 개발 시스템은 불평등의 새로운 지리학을 낳았다. 개발을 신봉하는 북반구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정적인 효과를 남반구의 빈민층이 뒤집어 쓰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소규모 경작을 하던 농민들이 상업형 농토 개발에 따라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면서 슬럼을 형성하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폐지나 넝마를 모으며 살아가는 인도 빈민여성들은 수입이 절반이나 줄어 새벽 5시가 아니라 3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일손을 돕기 위해 아이들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다.

때로는 서민을 도우려는 개발 담론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 빈곤층 소액 대출이라는 획기적인 사업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역시 초기의 취지가 무색하게 평균 이율은 20% 이상의 악덕 고리업으로 전락했다. 소액 대출 중 성공 케이스는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라민은행 설립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는 미소금융이 미래에 또 다른 형태의 악덕 사채업자들을 낳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고백을 해야 했다.

책 전반에 걸쳐 개발과 성장 담론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현실을 아프게 지적하면서 금융위기, 환경 위기, 식량 위기에 맞서 일어선 전 지구적 대항운동과 담론을 소개한다. 인도의 칩코 운동, 멕시코 사파티스타 봉기, 탈성장이나 제로성장 같은 대안적 성장이 그것이다. 인도어로 껴안다라는 뜻의 칩코 운동은 1973년 4월 히말라야의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원주민들이 전기톱을 휘두르는 벌목공들에 맞서 나무를 껴안으며 저항한 것을 일컫는다. 1983년 11월 신자유주의 반대와 원주민 권익보호를 요구하며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여 결성된 멕시코 사파티스타 역시 정책결정자들 사이에 원주민 현안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했다.

개발은 인간에게 기회와 번영을 확대해주지만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빈곤 퇴치를 목표로 삼지만 빈곤을 심화하기도 한다. 역자인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는 책에서 "개발만큼 역설로 가득 찬 현상도 없을 것"이라며 "그저 좋은 개발은 없으며,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어떤 성격이 개발인지를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600쪽의 방대한 분량에도 세계의 공장 중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에서 몰락한 디트로이트의 도시 농업 사례 등 풍부한 사례 분석으로 딱딱하지 않게 읽힌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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