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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가 낳은 아들, 운명의 소용돌이 헤쳐가는 악전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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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가 낳은 아들, 운명의 소용돌이 헤쳐가는 악전고투

입력
2013.04.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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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대 종신교수의 첫 소설의사로서 경험 작품 곳곳에 투영… 삶과 죽음 속 발견되는 운명의 힘

소설가가 되기에 유리한 전직(前職)으로 의사에 버금가는 것도 없을 듯싶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날마다 운명과 대적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문학적 가공을 거치지 않고도 쉽게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하물며 의사의 축적된 경험이 충분한 서사적ㆍ미적 변환을 거친다면야. 감동은 인화성 물질을 내장한 폭죽처럼 이내 폭발한다.

에이브러험 버기즈(58)의 은 의사가 쓸 수 있는 깊고 묵직한 소설의 한 예라 해도 좋겠다.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작가는 에세이스트로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하지만 2009년 출간된 이래 미국에서만 200만부가 넘게 팔리며 뉴욕타임스 133주 연속 베스트셀러라는 기록을 세웠고, 전 세계 30여개국에 번역, 소개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47년 인도에서 시작되는 이 장대한 소설의 기둥은 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운명의 힘과 그에 맞선 개인의 분투다. 한 인간의 운명은 탄생과 함께 시작, 아니 그에 좌우되므로, 서사의 근간을 이루는 주인공의 여정은 존재의 시원과 그 비밀을 밝히려는 악전고투에 다름 아니다. 두 권 합쳐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 중 약 200페이지가 주인공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일 정도.

미국 뉴욕의 저명 외과의가 된 중년의 매리언 프레이즈 스톤은 청년기 도망치듯 떠나온 고국 에티오피아의 자신이 태어났던 수술실로 돌아온다. 그곳은 매리언에게 고통의 공간이다. 선교와 박애의 실천을 위해 에티오피아로 건너온 간호사 겸 수녀 메리 조지프 프레이즈가 그곳에서 자신과 쌍둥이 동생을 낳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남몰래 아이를 배고 있던 젊고 아름다운 인도인 수녀는 처절한 출산의 고통 속에서 자궁파열로 숨지고, 이들의 아버지로는 7년간 메리의 조력으로 아프리카의 '신의 손'이 된 외과의 토머스 스톤이 지목된다.

이들의 사랑은 수녀의 출산과 죽음이라는 요소만으로도 충격적 스캔들이지만, 죽음의 결별 앞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랑이라는 점에서도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격변의 사건이 된다. '그 사랑은 흐름도, 굴곡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너무나 강해서 그 칠 년 동안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가 당연시하는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숨을 거둔 메리의 몸을 절개한 후 흉강에 손을 넣어 심장을 쥐어짜는 토머스의 절박한 몸부림과 절규.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한 아기들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분노로 토머스는 홀연 사라져버리고, 남겨진 쌍둥이는 동료 의사 부부의 손에 자란다.

부모의 비극적 사랑과 '그 소산으로서의 나'라는 슬픈 인식은 쌍둥이 형제와 한 여자의 엇갈린 사랑이라는 형태로 대를 이어 반복된다. 여기에 에티오피아 군부독재와 에리트레아 분리 독립 투쟁 등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가 교직되면서 무력하게 인간을 휩쓸어 감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펼쳐진다.

아버지 토머스는 수련의 시절 "쇼크를 일으킨 환자의 귀에는 어떤 응급치료를 해야 합니까?" 라는 교수의 질문에 "위로의 말입니다"라는 대답을 해 좋은 점수를 얻은 일이 있다.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나선 매리언은 의학 강의 중인 아버지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한다. 아비는 수많은 청중 속에서 한눈에 아들을 알아본다.

"행복의 열쇠는 너희 슬리퍼를 인정하는 것, 너희 존재를 인정하는 것, 너희 모습을 인정하는 것, 너희 가족을 인정하는 것, 너희 재능을 인정하는 것, 너희한테 없는 재능을 인정하는 것이야. 너희 슬리퍼를 계속 너희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헤매기만 하다 죽겠지. 우리가 행한 것뿐 아니라 미처 행하지 못한 것도 우리 운명이 된단다."

뜨겁게 끌어안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는 것이 결국 삶의 과정이라는 것. 작가가 자신의 직업적 지식을 십분 발휘하는 수많은 수술 장면과 의학적 묘사 중 유독 아이를 낳는 산부인과적 대목이 많은 것은 어쩌면 이런 인식과 연관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의 탄생의 순간이 그러한 것처럼, 결국 어떤 운명이든 장엄한 것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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