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기초 자치단체 선거에서만이라도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풀 뿌리 민주주의의 기본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당공천제의 순기능도 분명히 있지만 일선 지자체의 행정과 의정이 정파에 따라 양분되고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등 폐해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의 역기능으로 정치성이 낮은 지방행정이 정당개입으로 인해 합리성을 상실, 비능률을 초래하고 당선 이후 중앙당이나 지역 국회의원에게 예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정당공천으로 인해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 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제도적 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고 후보자에 대한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고경훈 박사는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결과를 봤을 때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선거의 주역을 지방에서 중앙으로, 그리고 주민에서 정당으로 전락 시켰고 정당공천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가 심각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당공천 폐지가 진정한 정치개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제가 그 지역 맹주격인 국회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정치 부패의 온상이 되고 다음 선거 공천을 의식해 평상시에도 국회의원에게 예속되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지방 행정ㆍ의회가 중앙의 정치논리로 황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회의원과 지방정치인 사이의 충돌은 대개 국회의원이 지방정치인을 자신의 정치적 하수인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사슬 관계를 끊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라는 주장이다.
경찰대 이관희(전 한국헌법학회장) 교수는 “정당 공천제를 없애면 지방정치의 자율성이 증대하면서 국회의원의 공천도 민주화돼 당원들의 의견이 존중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의 갈등도 오히려 줄어들고 국가정치인도 지방정치인도 주민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당공천 폐지 또는 개선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고 주민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주민추천제나 시민단체ㆍ비영리단체의 후보자 추천제도 도입, 기초단체ㆍ의회 선거자의 정당가입 금지 등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밖에 정당공천 기준을 명확하게 하거나 지역정당제의 허용, 공천기구의 상설화 등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당공천제의 순기능도 엄연히 있는 만큼 일방적으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의 책임성을 높이고, 유권자에게 후보자 선택 기준을 제공해주는 데다 유능한 정치지도자와 여성 정치인을 발굴ㆍ육성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선거의 정당 관여를 통해 효율적인 업무 추진도 가능해져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설명한다.
오철호 숭실대(행정학부) 교수는 “정당공천제가 득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사례를 보면 갈등을 야기하고 지역사업의 발목을 잡는 등 폐해가 많았다”며 “정당이 추천한 후보가 아닌 주민이 선출한 후보가 실패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주민들이 직접 지게 될 것이고 그래야 지역 정치에 더 큰 책임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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