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추창민 감독과 나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출국 했다. 피렌체에서 열리는 제11회 피렌체한국영화제에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영광스럽게도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생애처음 이탈리아땅을 밟게 되었다.
4박5일간 개막식 참석, 기자회견, 각종 매체들과의 인터뷰 등 정말 한시도 여유가 없을 만큼의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감독과 난 로마로 향했다. 로마대학 한국어학과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과 우리 영화를 같이 관람하고 잠시 영화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면 꿈과 같은 3박4일간의 자유일정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고 행복하게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제에 참석하는 행운이 뒤따랐다. 하지만 영화제 참석이라는 것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는 못하다. 공식행사에 당연히 참석해야 함은 물론 영화를 본 후 해당국가의 영화나 문화담당 기자들의 인터뷰나 기자회견, 또 재외공관에 계신 분들이나 현지 교민들과의 식사자리 등 공식, 비공식행사가 끊이질 않아 마음 편히 여행을 한다든지 거리를 둘러본다는 등의 자유는 거의 꿈도 꿀 수 없다. 그래서 이번 로마에서의 3박4일은 나와 감독에겐 정말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도 감독도 로마가 초행인지라 우리는 영화제 측에서 소개해준 한국여행사에 의뢰해서 로마시내관광이나 바티칸투어를 하게 되었다. 처음 가본 로마에서 감독과의 여행은 실로 달콤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진실의 문, 트레비분수, 그리고 콜로세움과 각종 광장들을 다니면서 오랜만에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은 군입대를 앞둔 대학생들이나 휴학을 하고 견문을 넓히고자 배낭여행을 하는 학생들, 아니면 취업을 앞두고 '마지막' 자유여행을 즐기려는 젊은 친구들이 90%이상이었고 간혹 부부나 부모동반 여행객이 보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이들과 다니다 보니 이곳이 로마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젊은 친구들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통해 한국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생중계해 주었고, 이곳 저곳에서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통해 한국노래가 흘러나왔으며 이동중인 버스에서도 한국의 오락프로가 방송되곤 하였다. 버스에서 이동 중 한국 젊은 친구들과 대화에 자연스레 끼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은 모두 같은 한국민박집에서 알게 되어 같이 여행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물론 여행경비가 부족한 한국 젊은이들에게 아침 저녁을 주는 한국민박집이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는 저렴한 호스텔도 아침을 제공하고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항상 차고 넘친다.
정리하자면 세상을 알고 견문을 넓히고자 이역만리 유럽까지 넘어온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한국민박집에서 묵고 아침 저녁을 한식으로 식사를 하고, 한국여행사를 통해서 한국인들과 어울려 여행을 하고, 저녁이면 여행을 통하여 알게 된 한국인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대화의 주제가 한국연예인, 한국정치, 한국사회이며,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한국드라마나 한국오락프로를 본다는 거다.
호스텔에 묵으면서 해외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과 같이 생각을 나누고, 그들과 어울려서 맥주를 마시고 현지음식을 먹으면 뭐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는 건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다양한 문화권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통해 얻고 느끼는 것이 결코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젊은 친구들이 스스로 그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 진심으로 너무 안타깝고 속상했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하고 싶다. 여행은 삶이 풍요로워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자기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끼리 다니고, 우리음식 먹고, 우리문화만 접해서는 절대 발전이 없다. 한국을 잊어라, 한국음식도 참아라, 한국노래, 한국드라마도 잠시 접어두어라. 너희들이 걱정 안 해도 조국은 아무 문제가 없다. 후배들이여 부딪치고 도전하고 또 부딪쳐라!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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