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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절벽과 폭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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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절벽과 폭포 사이

입력
2013.04.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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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임영석(52)의 작품 는 아주 간단하다. '물길이 있으면 폭포요/물길이 없으면 절벽이다.'맞다. 읽고 보니 그렇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듣고 보면 누구나 말할 수 있음직한 것을 이렇게 먼저 이야기해준다.

청와대와 언론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이 시를 떠올린 것은 절벽이라는 말 때문이다. 절벽은 이 땅과 저 땅의 연결을 끊어놓는 낭떠러지다. 멋도 모르고 한 발 앞으로 더 나갔다간 떨어져 큰 사고를 당하거나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청와대는 그제 언론에 대해 '관계자'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청와대 발 외교안보 기사가 늘어나면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나 관계자 명의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주문은 대변인이나 이정현 정무수석 등 실명 보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대변인에게 물어달라. 그러면 취재를 해서 알려줄 테니 내 이름으로 기사를 쓰라"는 요지의 말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이런 주문이 있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청와대 핵심관계자'라는 익명 발언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자 실명으로만 발언하겠다고 한 바 있다.'이핵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청와대 핵심참모'나 '관계자'가 아니라 '민정라인 관계자', '정무라인 관계자' 등으로 정정당당하게 써줄 것을 주문했었다. 이에 비하면 아예 관계자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는 박근혜 정부의 주문은 내용이 더 센 셈이다.

이런 요구가 성립하려면 언론과 청와대 수석들의 접촉이 더 수월해지고 대변인들이 언론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대변인과 언론의 소통부터 원활하지 못하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익명 보도 자제만을 요구하는 것은 취재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일이며 직접취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주재국의 아그레망을 대기 중인 대사 내정자들을 청와대 블로그에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문제의 핵심은 익명 보도의 필요성 여부다. 익명 보도는 언론의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언론을 통한 여론 전파나 파악을 위해 취재원 스스로 요구하는 경우에도 행해진다. 그런 보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든 언론에 대한 제한, 취재원의 대 언론활동 제한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공식적인 말,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알게 되는 말만 받아 적으라는 식의 요구에 호응할 언론은 없다.

물론 익명 보도의 전제는 사실에 입각한 정직하고 왜곡 없는 취재와 기사 작성이다. 대충 그럴 것이라는 기자 자신의 추정이나 작문을 숨기기 위해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하는 기자는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청와대의 지적대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기자는 저절로 도태되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전부터 걱정스러운 것은 두 가지였다. 인재풀이 개인적 인간관계 위주로 짜여 있어 광범한 인재 발굴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점을 먼저 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나친 보안의식으로 인해 언론과의 관계가 불편할 것이라는 게 두 번째 취약점으로 보였다. 역시 우려한 대로 대변인 인선부터 지금의 상황까지 언론과의 관계는 점차 더 나빠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길이 없으면 절벽이요, 물길이 있으면 폭포다. 폭포는 보는 이들을 시원하게 해준다. 폭포는 위험한 것 같이 보여도 일정한 수량과 물길의 방향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물이 흘러야 절벽은 의미가 있는 장소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인사문제나 다른 국정 현안에 대해 궁금해 하고 빨리 알지 못해 답답해 하는 것은 기자들이지 국민들이 아니라는 막힌 생각으로 언론을 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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