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관습적 사고방식 재구성… 내 작업은 비평적 디자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관습적 사고방식 재구성… 내 작업은 비평적 디자인”

입력
2013.04.04 12:37
0 0

북한에 피자 요리법 동영상 뿌리고 주민들이 보낸 영상 선보이기도영국서 15년전 태동 '비평적 디자인' … 물질문명·대량생산 대안 모색예술실험 넘어 탈예술 지평까지"예술이란 생각하게 만드는 것… 질문·사색 없으면 끌려가게되니까"

"남과 북의 젊은이가 처음 만나 서로 알고 싶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맥락을 보여주고 싶었다. 궁금하지 않나. 데이트 할 때 뭘 할까. 키스는 어떻게 할까. 체제나 이념을 떠나서, 기존의 고리타분한 틀이나 관습을 버리고, 젊은이다운 순수한 호기심으로 만나고 싶었다."

남과 북의 실시간 소통 실험인 'X:나는 B가 좋던데. Y:나도 스물아홉이야'의 작가 김황(33)은 작업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동료 예술가 사라 마넨테, 마르코스 시모즈와 함께 연출한 작품이다.

중국 옌벤의 모처와 서울 서강대 메리홀을 카메라와 마이크, 스크린으로 연결해 30, 31일 선보인 이 작품은 즉흥으로 진행됐다. 서울과 옌벤에 떨어진 남과 북의 20, 30대 젊은 배우는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보이지만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이 주문한 주문한 동작이 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나눴다. 불완전한 소통을 돌파하는 수단으로는 텔레파시를 썼다. 웃음을 자아내는 동문서답과 엉뚱한 사건에 간혹 우연한 일치가 뒤섞인 60분간의 실험극은 분단 60년을 훌쩍 넘긴 한반도 상황을 환기시켰다.

연극인지 영상설치인지 퍼포먼스인지 헷갈리는 이 작품을 내놓은 김황은 '디자이너'다. 홍익대 미대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제품디자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의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장르와 경계를 무시하는 창작 실험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예술가다. 2009년 차세대 디자인 리더, 2011년 아르코 영 아트 프론티어로 선정됐다.

이번 공연을 마친 다음 날인 1일 밤, 서울의 홍대 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맑은 표정의 앳된 소년처럼 보였다. 그날 아침 연변에서 날아왔다. 한국을 떠난 지 7년,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다시 5개월 전 암스테르담으로 옮겨 살고 있다.

예술가로서 그가 해 온 작업은 우리가 흔히 아는 디자이너의 일이 아니다. 노숙자를 위한 접이식 종이 텐트 '코쿤'(2003), CCTV가 달린 문어발 모양 장치를 목에 얹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심리지도'를 만든 'CCTV 샹들리에'(2009), 북한 주민들에게 피자 만들어 먹는 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만들어 북한에 뿌리고 북한 주민들이 보내온 반응을 합쳐 영상과 공연으로 구성한 '모두를 위한 피자'(2011) 등 별난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쯤 되면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비평적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비평적 디자인'은 대량생산에 기반을 둔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는 새로운 예술운동이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는 기능이고, 산업시대 디자인은 대량생산과 결부됐다. 그런데 물질 문명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대량생산 자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디자이너의 존립 기반이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한 거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게 '비평적 디자인'이다. 비평적 디자인은 기술이나 물건의 미학적 관점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산업적 진보를 더디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비평적 디자인'은 낯선 개념이다.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1998년, 영국에서 (던 & 라비 지음)이라는 책이 나오면서부터라니 얼마 안 됐다. 이 분야의 한국 작가로는 김황이 유일하고 태동지인 영국에서도 소그룹 운동이라고 한다.

그는 "비평적 디자인의 최근 작업에는 사람 피로 켜지는 라디오, 쥐의 뇌세포에 전기자극을 가해 뇌세포의 반응을 관찰하는 장난감처럼 과학과 일상, 생명과 비생명을 융합하는 것도 있다"고 소개했다. 예술 안에서의 실험을 넘어 탈예술의 지평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형국이다. 결국 비평적 디자인은 시각적ㆍ미학적 설계를 넘어 사고방식을 재구성하는 작업인 셈이다.

"내 작업의 주요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과 집단의 구조에 대한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소통의 문제다. 예술은 생각하게 만드는 것,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과 사색이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끌려가게 되니까."

인터뷰 다음날 아침, 그는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이 진지한 작가의 다음 작업이 기대가 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