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모두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난리다. 과연 행복이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영원한 주제인 듯싶다. 그런데 좀 유별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절망적인 조건에 처하지 않았으면, 다시 말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을 뿐이다. 나는 이것을 불행하지 않을 권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 생각에 행복은 다소간 억압적 개념이다. 그것은 경쟁의 결과에 대한 성취이거나 고통을 감내한 보상이라는 성격이 짙으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비틀어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 대신에 불행하지 않게 살겠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뛰어가지 않을 때는 그 누구도 숨 가쁘지 않았는데, 한두 사람이 앞서서 빨리 걷다 보니 너도 나도 뛰어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숨이 차서 헐떡거린다. 이데아 세계를 꿈꾸었던 플라톤은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힘을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자, 우린 불행하지 않을 권리를 이미 갖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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