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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의욕 상실… 15년차 동료 교사도 결국 학원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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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의욕 상실… 15년차 동료 교사도 결국 학원行”

입력
2013.04.0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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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간섭이에요?"

서울 송파구 한 일반고의 A 교사가 등교지도를 할 때면 으레 듣는 말이다. 교복 넥타이를 매지 않는 건 애교로 넘기고, 속옷이 다 보일 정도로 치마를 짧게 고쳐 입거나 아예 교복을 입지 않는 학생들만 지적하는데도 그렇다. 되레 "간섭하지 말라"며 대드는 아이들이 하루에 서너 명씩은 된다.

작년 한 해 이 학교의 학생 징계 건수는 470건에 이르렀다. 흡연, 지도 불응에 학교폭력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자는 걸 깨웠다고 여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성희롱 발언을 해 학생을 강제 전학시킨 일도 있다. 4년 전만 해도 징계는 많아야 1년에 20~30건 정도였다. 그랬던 학교 분위기가 이 지경이 된 건 2010년 서울 전체에서 원하는 고교를 지원할 수 있는 고교선택제가 시행되고 주변에 자율형사립고가 4곳이나 생겨 학업에 뜻을 둔 학생들이 크게 줄어들면서부터다. A 교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용이나 국화 문신을 한 애들, 이미 소년원에까지 다녀온 애들, 1~2년을 소위 '꿇은' 애들도 심심찮게 있다"며 "그런 학생이 있으면 평범한 학생들은 교실에서 숨도 못쉰다"고 말했다.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 일반고는 '이반고'라는 푸념이 나온다. 평준적인 수준의 '1반 학생들'이 아닌 그보다 떨어지는 '2반 학생들'이 가는 곳이 됐다는 뜻이다. 상위권 학생들은 진작 특수목적고로, 중위권 이상 학생들은 자사고로, 실업계를 지망하는 우수학생들은 특성화고로 가면서다.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의 결과 우수 학생들이 특목고와 자사고로 몰리면서 일반고가 엉망이 된 것은 단지 학생들의 학력이 하락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사들은 생활지도나 인성교육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중랑구 소재 고교의 이모 교사는 "요즘은 학생들이 교사에게 거짓말이나 대드는 건 당연시하는 분위기"라며 "한 반 35명 중 공부하는 5~6명을 제외하곤 스스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며 자포자기한 학생들이 대다수라 교과지도나 인성교육 모두 안 된다"고 토로했다.

수업 분위기는 떠들지 않으면 고마운 정도다. 서울 한 일반고 김유현 교사는 수업을 하려고 학생들 앞에 서면 암담한 생각이 든다. 교과서나 공책도 없이 책상에 앉은 학생이 3~5명씩은 항상 있다. 펜조차 없는 아이에겐 다른 학생에게 빌려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다른 일반고의 수학 교사는 "20명 중 단 한 명이 수업을 듣는데 그래도 그 한 명을 위해 수업을 했다"고 말했다.

우선선발권이 없는 일반고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우수 학생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자사고 부적응 학생 해결사 노릇까지 해야 한다. 한 일반고 교감은 "주변의 자사고 등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다 전학 받다보니 35명이던 한 반 인원이 42명까지 늘어난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유현 교사 반에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직후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자사고에 입학했던 학생이 견디지 못하고 전학 왔다. 그 빈 자리에 이 학교의 전교 2등 학생이 전학을 갔다. 김 교사는 "고교다양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했을 때부터 예견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억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일반고 교실의 붕괴는 교사들까지 무력감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 고교 임모 교사는 "시끄럽게 하는 학생들과 실랑이라도 하는 교사는 일부고 사실 대부분은 그냥 포기한다"고 전했다. 입시학원으로 향하는 교사들도 있다. 강북의 한 고교 교사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던 15년차 베테랑 수학교사가 곱셈, 나눗셈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다 결국은 유명 학원으로 가더라"며 "교사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교편을 잡았는데 요즘 같아서는 나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한국일보가 지난 달 13~15일 전국 고교 교사 98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확인됐다. '일반고에서 특목고나 자사고로 이직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 44명(5.3%)은 "의욕이 있는 학생을 가르치고 싶어서" "일반고는 수업하기가 힘들다" "학생 생활ㆍ학습ㆍ진로지도가 수월하다" "일반고는 인성교육이 불가능하다"라는 이유를 댔다.

이처럼 신경써야 할 '관심 학생'들은 많아졌는데도 과중한 행정업무는 여전하다. 학생생활기록부, 학생기초조사서, 학부모와 학생의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 이용 동의서, 가정통신문, 야간자율학습 신청서, 교육비ㆍ물품지원서 등 학기 초에만 교사들이 처리해야 할 행정문서는 그득하다. 조모 교사는 "서류를 배부하고 제출 받아 입력하고 분석하는 일까지 학원으로 치면 행정실이 하는 업무를 죄다 교사들이 하다보니 문제 학생상담이나 인성교육을 할 여력이 없다"며 "학교에서는 은근히 문제 학생들은 제 발로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열관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교다양화 정책에 따라) 학생들을 분리하면 '또래집단' 효과 때문에 잘 되는 학교는 계속 잘되고 안 되는 학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박근혜 정부가 2017년까지 고교 의무냅걋?완성하겠다고 했는데, 그 의무교육의 취지와 배치되는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A 교사도 "자사고 특성화고 등이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준 것같지만 사실은 경제력에 따라 교육권이 주어지거나 박탈되는 게 문제"라며 "특목고나 자사고 등이 원래의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일반고는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이라며 "학교나 교사들이 생활ㆍ교과지도가 안된다며 부진아 지도를 꺼릴 게 아니라 뽑은 학생을 제대로 기르는 '교육 경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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