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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사건 재심 늑장 “피해 구제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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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사건 재심 늑장 “피해 구제 언제나…”

입력
2013.04.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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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1, 2, 9호에 대해 지난달 21일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일선 법원에서 2주 넘도록 긴급조치 사건의 재심 개시(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 것)를 미루고 있다. 법원이 헌재와의 관할권 다툼 때문에 사법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긴급조치 위반 재심사건 법리를 뒷받침하는 대법원 판결이 곧 나올 예정이니 재심 개시를 미루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동료 부장판사들에게 보냈다.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일부 판사들도 이 같은 내용을 전달받아 재심 개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현재 서울고법에 80여건, 서울중앙지법에 20여건의 긴급조치 재심사건이 계류 중인데도 아직까지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해당 부장판사는 이날 기자와 만나 "헌재 결정 직후 대법원의 한 수석연구관으로부터 긴급조치 재심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이 곧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재심사건을 맡고 있는 동료 부장판사들에게 참고하라고 이메일로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이처럼 집단적으로 긴급조치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미루는 것은 대법원이 헌재와 재판 관할권을 놓고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이 선고됐던 오종상(72)씨에 대한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하며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권은 최종적으로 대법원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긴급조치는 헌재의 위헌심사 대상인 법률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하급심 재판부의 입장은 둘로 갈렸다. 첫째는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형사소송법상 재심 개시 사유인 '새로운 증거가 나왔을 때'로 보기 어렵다며 헌재 결정을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었다. 두번째는 이와 달리 대법원 판결을 새로운 증거로 해석, 긴급조치 사건 재심을 개시해 무죄까지 선고한 경우다. 이 때문에 같은 내용의 긴급조치 1호 위반 사건인데도 고 장준하 선생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대법원 논리를 기반으로 재심을 개시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백기완씨에 대한 재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5년째 사건을 묵혀두고 있다.

그런데 막상 헌재가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번에는 일선 법원이 또 다른 이유로 선고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긴급조치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제한과 형벌 규정 등을 두었던 점에 비춰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어 위헌 심사 권한은 헌재에 전속한다"고 대법원과 정반대의 근거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선 법원으로서는 헌재의 법리를 따르자니 대법원 눈치가 보이고, 대법원 법리를 따르자니 '그러려면 왜 지금까지 헌재 결정을 기다리며 재심 개시를 미뤄왔냐'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조영선 법무법인 동화 대표변호사는 "일선 법원이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에도 재심 개시를 미루는 것은 '긴급조치 위헌 판단의 관할은 대법원'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깨기 부담스러워 그런 것"이라며 "판사들이 법리를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긴급조치 사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느쪽의 논리로 무죄가 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닌 만큼 시간을 끌기보다 조속히 권리 구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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