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출신” 주위 반응, 교내 식당 이용 쑥스러워, 경비원이 붙잡기도
-음악치료 같은 특화된 전공 찾는 남성들 여대 대학원 문 ‘똑똑’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의 한 강의실.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음악치료사 모의체험 수업에서 10명의 여학생 틈에 앉아 노트 필기를 하고 있었다. 이 청일점은 올해 이 여대 대학원 음악치료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한 이승윤(26)씨. 자신의 발표 차례가 되자 그는 직접 피아노 건반을 쳐가며 음악으로 발달장애아동과 소통하는 법을 설명했다. 또 한 여학생을 아이로 가정해 여학생의 팔목을 잡고 실로폰 연주도 가르쳤다.
같은 수업을 듣는 김민지(23)씨는 “처음 강의실에서 봤을 땐 흠칫 놀란 건 사실”이라면서도 “남학생이라 스스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아서 적응을 잘해 나가고 수업에도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여대 입학 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던 이씨는 음악으로 장애아동과 치매노인을 상담ㆍ치료하는 음악치료사를 꿈꾸며 관련 학과를 찾다 이곳을 택했다.
이씨처럼 대학 졸업 후 자신의 희망진로에 걸맞은 전공을 찾아 여대 대학원 문을 두드리는 남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소재 여대에 따르면 현재 성신여대(52명), 서울여대(25명), 숙명여대(23명), 동덕여대(23명), 덕성여대(9명) 등에서 남학생들이 대학원에 다니며 여대 학생증을 들고 다닌다. 이들 여대에선 학부와 다르게 대학원 입학에 남학생의 지원을 제한하는 학칙을 두지 않고 있다. 숙명여대 등 일부 대학에선 특수대학원에서만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여대 남학생들은 학기 초 낯선 학내 문화를 접하며 남모를 고충을 겪는다. 이씨는 “공부하는 강의실과 도서관은 몰라도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교내 식당이나 카페는 선뜻 들어갈 용기가 안 난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9월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에 들어간 남학생 지모(28ㆍ전통식생활문화 전공)씨도 “입학했을 때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가다 하교하는 수많은 여학생들을 보면 괜히 어찌할 줄 몰랐다”며 “여자동기들로부터 ‘왜 혼자 난리냐, 아무도 너 안 쳐다본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남학생들이 외부인으로 오해 받아 교내 경비직원에게 제지당하기도 한다. 이씨는 “중앙도서관에서 임시 학생증을 어디다 찍어야 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직원들이 신상을 꼬치꼬치 캐물었다”며 학기 초 에피소드를 말했다.
특히 이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건 사회생활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다. 올해 신설된 동덕여대 통합예술치료학과 박사과정에 다니는 배상국(40)씨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느 대학에 있냐’고 물으면 사실 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들 남학생들이 이질적 환경을 견딜 각오가 돼 있는 것은 전공분야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기 때문. 배씨는 “영화를 보여주며 정신적 상처를 받은 이의 아픔을 치유하는 ‘영화 치료’에 관심 있던 데다 미술치료, 음악치료처럼 예술이 갖는 치유의 특성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려고 여기로 왔다”며 “차츰차츰 여대 캠퍼스가 내 집처럼 편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ㆍ사진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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