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의 디지털 음원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
록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신곡 '좋다 말았네'를 디지털 음원으로 내놓으며 가격을 빈칸으로 남겨놓았다. 0을 쓰고 공짜로 받아갈 수도 있고, 10원이나 500원을 낼 수도 있다. 저작권자가 아닌 소비자가 직접 가격을 정하고 다운로드 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2007년 영국의 인기 록 밴드 라디오헤드가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7집 '인 레인보스'전체 음원을 비슷한 방식으로 공개한 적이 있다. 당시 60%가 공짜로 다운로드 받았고, 나머지 40%는 10곡이 담긴 앨범을 듣기 위해 평균 4파운드(7,000원)를 지불했다.
지금 곡당 1달러(1,100원) 정도 하는 디지털 음원 가격에는 못 미치지만 라디오헤드는 결과에 꽤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밴드의 리더 톰 요크는 당시 인터뷰에서 "음반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판매한 7집 디지털 음원의 판매 수익이 이전까지 받은 음원 수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에 작성한 계약서엔 디지털 음원 관련 조항이 없어서 음반사로부터 적절한 판매 수익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번 신곡 음원 매출액의 80%를 받는다. 3일까지 1,000여회의 다운로드를 통해 모은 돈은 약 180만원. 한 차례 다운로드에 1,800원 정도를 낸 것이다. 국내 음원 사이트의 곡당 다운로드 가격이 100~600원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장기하는 지난 달 음원 판매를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시중 가격이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사업자들이 임의로 책정한 것이라면 이번 실험은 소비자가 생각하는 적정한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다운로드 음원 단가는 해외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2.39달러, 영국 1.24달러, 미국 0.99달러였다. 600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내의 음원 가격은 미국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문체부는 당시 "1년 내 유료 음원 구입 경험이 있는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운로드 1곡당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의 평균은 432.39원"이라고 밝혔다.
다운로드 묶음상품의 경우 곡당 가격이 100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고려하면 현행 단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실험이나 문화부 조사 결과와 차이가 크다. 음원 서비스 업계에서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원 구매자들, 문화부 조사자료에 포함된 소비자들은 일반적인 디지털 음원 이용자들과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디지털 음원 소비자의 80% 이상이 다운로드가 아닌 월정액 무제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 음원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올 초 디지털 음원 가격이 오르면서 신규 가입자가 급감해 업체마다 경쟁적으로 할인상품을 내놓고 있다"며 "적정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선 음악 저작권 3단체와 음원 서비스 업체뿐만 아니라 소비자 의견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