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백일몽 같은 것이었을까. 만, 아니 억의 단위로 나이를 세다가 가맣게 잊어버렸을 대지에게 인간이라는 종이 스쳐간 시간은. 나고 죽고 나고 죽어서 마을과 전설을 만들고, 기쁘고 섧고 또 기쁘고 서러워서 살아 있었던 인간들의 세월은. 집터가 숲으로, 묵정논이 늪으로 천이(遷移) 중인 풍경 앞에서 대지의 무심함이 새삼스러웠다. 제 몸에 호미날을 대고 탑을 쌓고 죽어서 묻히던 작은 무늬들을 대지는 기억하지 않는 듯 보였다. 망각, 그러므로 자연(自然). 신록 돋는 봄, 대지는 인간의 흔적을 지워가며 한층 깊은 푸르름 속으로 들고 있었다.
30여년 전 전남 영광 바닷가에 어두운 소문이 돌았다. 핵발전소를 짓는다고 했다. 그게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흉흉한 일이 잦은 때였고, 숨죽이고 살던 세월이었다. 소문은 머잖아 사실이 됐다. 1981년 터를 파기 시작한 영광원자력발전소는 1985년 핵연료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핵연료를 태웠다. 이웃 고을 고창의 작은 마을들이 수몰된 것은 그 무렵이다. 처음에는 식수가, 나중엔 핵발전에 필요한 용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8개 부락 158세대가 대대로 정든 터를 떠나야 했다. 거기 운곡리가 포함돼 있었다.
"부자도 ?졀?베실(벼슬)하는 사람도 ?졀立?근게 가라면 가야지 뭐. 운곡리? 벨것 없었어. 벼 좀 하고 밭 하고 그렇지 뭐. 아, 딱밭(닥나무밭)은 좀 있었제."
고창군 아산면 죽림리 사는 김성수(68)씨는 그렇게 말했다. 운곡리는 바로 이웃 마을 사람의 기억에도 고유명사 하나 남기지 못했다. 아산면 면지를 뒤져보니 운곡리에 대한 설명이 딱 여섯 줄.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많아 구름골(雲谷)로 불렸고, 춘하추동 잡곡으로 연명했다는 얘기가 다다. 그런데 핵발전소 용수 공급용 댐(아산댐)을 이곳에 만들면서 저수지 이름에 '운곡'을 붙였다. 마을은 잠겼고, 경작은 금지됐고, 주민들은 뿔뿔이 떠났다. 운곡은 감시망을 피해 저수지에서 도둑 낚시 하는 사람들의 입에나 간간이 올랐다. 그렇게 30년이 흘러갔다.
운곡이라는 이름이 다시 주목 받은 건 2009년. 환경직 공무원으로 오래 일한 한웅재 전 고창 부군수가 우연히 운곡리의 옛 논밭을 '발견'했다. 사람의 발길이 끊겼던 경작지는 내륙 산지형 저층습지, 쉽게 말해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가치를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와 비교했다. 늪이 돼 잊혀진 땅으로 경계조차 희미하던 곳이, 그때부터 운곡습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오베이골(五方谷), 호비(虎鼻)골 같은 오래된 옛 지명도 되살아났다. 2011년, 운곡습지는 우리나라 16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운곡습지는 동쪽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창 고인돌 유적, 서쪽으로 운곡저수지와 연결된다. 고인돌 유적에서 탐방을 시작하는 쪽이 편하다. 아직 찾는 이가 드물다. 주말이면 나들이객으로 붐비는 유적만 벗어나면 곧 한적한 숲길. 그런데 지난 주말, 운곡습지로 가는 길이 조금 어수선했다. 이곳의 생태적 가치를 모르던 8년 전, 고창군은 운곡습지를 끼고 도는 길에 문화유적을 잇는 탐방로를 만들었다. 탐방로 따라 배수로도 팠는데, 그게 습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다시 메우는 중이었다. 공사는 이달 중 완료될 예정이다.
고인돌 유적에서 약 500m 정도 떨어진 언덕길. 발 밑의 흙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진 옛 탐방로를 따라 습지를 멀찍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습지 속으로 뻗은 탐방로를 새로 만들었다. 나무로 된 데크로 폭이 80㎝밖에 안 된다. 습지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습지에서 1m 가량 공중에 띄워져 있고 바닥에 깔린 나무판도 5㎝ 간격으로 틈이 벌어져 있다.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면 발이 빠질 수도 있다. 햇볕을 통과시켜 데크 아래 사는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옛 탐방로 따라 운곡습지를 도는 코스는 총 3㎞ 정도밖에 안 됐다. 하지만 지그재그 형태로 습지 깊숙이 뻗은 데크를 따라 걸으니 거리가 몇 배로 늘어났다. 인적은 없고 습지엔 봄이 멀었다. 한해살이 풀들은 아직 키가 짧고, 오월이 되면 눈부신 녹색 잎사귀에 파묻히는 나무들도 가지가 앙상했다. 그래도 헐벗은 느낌이 없었다. 이른 봄의 산등성이와는 다른 어떤 충만함이 운곡습지에 가득했다. 그것은 생명을 물기 머금은 부드러움으로 보듬는 대지의 힘인 듯했다. 자박하게 물이 찬 바닥엔 이름을 모르는 양서류의 알이 몽우리 맺혀 있었다. 도망치는 고라니의 발 밑에도 물방울이 튀었다.
"이곳은 정말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보호종 식물만 낙지다리, 통발, 물잔디, 진퍼리사초, 금족제비고사리 등이 있어요. 삵, 말똥가리, 수달 같은 멸종위기 동물들도 심심찮게 발견되고요…"
운곡습지를 수년 간 관찰한 김창환 전북대 교수는 이곳이 지닌 생물학적 가치를 길게 설명해줬다. 그런 설명이 없더라도 들어와 걸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생명이라는 두 글자에 담긴 세계가 얼마나 촉촉하고, 또 촉촉해야 하는 것인지를. 습지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꼽으며 걷는데 툭, 부서진 시멘트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무너져 내린 축사 흔적이다. 유심히 보면 태초부터 늪이었던 듯한 운곡습지 곳곳에 사람의 손으로 그은 선을 볼 수 있다. 이전 운곡리 논의 경계선이다. 자연이 원시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속도는 맹렬한 것이어서, 겨우 30년 저쪽 인간의 흔적이라기에 그 모습이 너무 희미했다.
인위가 자연으로 귀의하는 모습에 나는 언제나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운곡리가 운곡습지 속에 녹아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사뭇 다른 감상이 들었다. 이 논두렁, 밭두렁에 기대 울고 웃던 투박한 얼굴들, 구들돌 굽고 닥나무 껍질 벗겨 종이 뜨던 질긴 세월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습지에 솟은 버드나무, 물잔디의 잎맥 속에도 그 기억이 담기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자연은, 어쩌면 무정한 존재다. 원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려는 운곡습지의 모습이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아름답다거니 눈부시다거니 호들갑을 떨기 전에, 자연 앞에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역시 이곳 운곡습지가 하게 만들었다.
여행수첩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에서 나와 아산 방면으로 꺾으면 운곡습지의 입구인 고창 고인돌 유적이 지척이다. 고인돌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적까지 걷거나,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탐방열차(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를 타야 한다. 고인돌박물관 (063)560-8666 ●운곡습지뿐 아니라 운곡저수지까지 2011년 '고창 운곡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동식물을 채취하거나 낚시를 하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돼 있다. 고창군 환경위생사업소 (063)560-2871
사진제공=고창군 환경위생사업소
고창=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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