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전공학부에는 수능 한 두 개 틀린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했다. 입학 한 달 만에 없어질 줄 알았다면 지원하지도 않았다."
지난달 26일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열린 '연세대 자유전공 폐지 및 언더우드국제대학 학제개편 토론회'에서 자유전공학부의 한 신입생 학부모는 "연세대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속였다"며 강한 어조로 학교 측의 무책임한 행태를 질타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새로 만든다는 글로벌융합학부는 자유전공학부의 본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한 학기 등록금이 자유전공보다 2배 가량 비싸다"며 "대학의 장삿속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1일에는 연세대 자유전공학부 등 통폐합 대상 재학생 학부모 60여명이 총장실 앞에서 ▦현행 학제대로 학부 존속 ▦입학 당시 제시한 교과과정 운영 등을 요구하며 강력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서울 주요대학들이 기존 법과대 정원을 학부에서 소화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든 자유전공학부의 존폐를 놓고 진통을 앓고 있다. 특히 2014학년도부터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고 각각 글로벌융합학부, Language & Diplomacy (LD)학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연세대와 한국외대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 반발이 거세다.
한국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도 지난달 29일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학제 개편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학부모 40여명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학교 측에 개편안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해 놓고 방치하더니, 이제 와서 학생에 대한 고려 없이 대학 멋대로 학제를 개편한다는 게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이다.
연세대와 한국외대는 2일 각각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해법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관계자는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1학년 이후 경영대 등 일부 학과에 쏠리는 현상을 개선하면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자유전공과 글로벌융합학과의 취지가 다르지 않다"며 "학생들의 반발이 심하지만 지난 1년간 준비해 온 만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내년 말까지 세밀하게 다듬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뿐만 아니라'다양한 경험을 통한 통섭과 융합 인재 육성'이라는 자유전공 학부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대학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성균관대가 자유전공학부를 없애고 2011년 신설한 글로벌리더학부는 로스쿨 진학을 대비하는 '법무 트랙'과 외무고시 등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정책학 트랙'으로 나눠져 있다. 중앙대 역시 자유전공학부 신설 1년 만에 로스쿨 진학과 행정고시 준비에 초점을 맞춘 공공인재학부로 전환했다. 한국외대가 신설하기로 한 LD학부는 외무고시 준비에 방점이 찍혀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유현숙 박사는 "대학이 학부를 신설하거나 개편할 때 대중적인 트렌드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역량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장기적인 계획과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라며 "대학이 충분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학생들이 납득할만한 개선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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