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영화 '지슬'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자막 덕이 컸다. 이 영화에는 한국말이 아니라 제주말이 쓰인다. 그리고 제주말을 못 알아듣는 이들을 위해 자막이 붙는다. 자막이 없었다면 나는 몇 마디나 이해했을까. 영어를 들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영화가 아니라 제주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사람의, 제주사람에 의한, 제주사람을 위한 영화.
이 영화는 제주4ㆍ3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외지사람에게 그 참상의 경위를 널리 전하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는다. 제주의 비극을 알아달라고, 공분해달라고, 외지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대신, 그 비극을 몸소 겪은 제주사람의 넋을 쓰다듬으려 한다.
외지사람에게 구애하기 위해서는 얄팍해질 필요가 있다. 접근성이 좋고 적당히 이색적인 풍물을 간직한 곳이 관광명소로 뜨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라산도 나오고 해녀도 좀 나왔다면 제주 느낌이 물씬 풍겼을 것이다. 진짜 제주말 대신 제주어휘 몇 개를 끼워넣어 무늬만 냈더라면 훨씬 듣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관광지에서 현지인의 삶이 배제되듯, 그런 세계에는 제주사람의 삶과 마음이 깃들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4월3일이다. '감자의 세계'를 살아가는 나는, 꽃 피는 제주에 가듯 피 묻은 '지슬의 세계'에 함부로 들어설 수 없다. 분노나 아픔보다는 막막함이 앞선다. 이 막막함으로 예를 갖춰, 그날의 혼령들께 오늘은 마음으로 술 한 잔 올려야겠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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