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인 공동묘지인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 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공원 입구로 들어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길 왼편에 연보비(年譜碑)가 나타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시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의 연보비다.
길 아래로 이어진 나무계단으로 내려가면 박인환의 묘가 나온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묘비엔'세월이 가면'의 첫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시는 1956년 박인환이 명동의 한 대포집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를 쓰고 며칠 뒤인 3월20일 만취 상태로 서울 세종로 집에 들어온 서른한살의 시인 박인환은 "답답해"를 연발하며 가슴을 쥐어뜯다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근심을 잊는다'는 뜻의 지명을 가진 망우(忘憂)리공원에선 일제강점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망우리공원은 망우산 일대 51만1,996㎡에 조성된 묘지 공원으로 미아리 공동묘지가 가득 차자 1933년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현재 8,482기의 묘가 남아 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도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다. 불교 승려지만 결혼을 했던 한용운 선생의 부인 유숙원 여사도 만해의 오른쪽 옆에 함께 묻혔다.
이승만 정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한 진보적 정치가 죽산 조봉암의 묘엔 비문이 없다. 비석에 '죽산조봉암선생지묘'라고 새겨져 있을 뿐 어떤 비문도 새겨져 있지 않은데. 1959년 조봉암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되자 정부가 비문을 새기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 외 화가 이중섭, 를 쓴 소설가 계용묵, 의 김말봉, 천연두 퇴치를 위해 종두법을 도입한 지석영, 아동문학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방정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가수 차중락 등 시인, 소설가, 학자, 정치가, 독립운동가들이 망우리공원에 잠들어 있다.
서울시는 망우리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는 인물에 얽힌 역사를 배우고, 삶과 인생목표를 성찰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 '묘역따라 역사여행'을 10월까지 운영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향토문화해설사와 함께 저명인사들의 약력, 그림, 시, 노래를 통해 그들의 시대적 삶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투어코스는 독립운동가, 정치가, 학자 등의 묘역을 도는 민족사랑묘역 A코스, 문학가, 미술가 묘역을 도는 예술사랑묘역 B코스로 나눠 운영되며 참가를 희망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상 학생과 일반인 30명 안팎의 단체는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yeyak.seoul.go.kr)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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