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미 라인인 이른바 뉴욕채널 인사들과 본보 취재진이 만난 지난달 28일(현지시간)은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날이었다. 북한이 두려워할 스텔스 폭격기 B-2 2대가 이날 미국 본토에서 한국으로 날아가 폭격훈련을 했다. 그런 만큼 맨해튼 인근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진 뉴욕채널과의 대화는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시작됐다. 남북 대치가 엄중한 만큼 대화의 내용과 형식 모두 가볍지만은 않았다. 뉴욕채널이란 광의로는 미국과 북한 유엔대표부의 대화 채널을, 좁게는 클리퍼드 하트 미국 6자회담 특사와 한성렬 북한 차석대사의 외교경로를 말한다. 이날 만난 뉴욕채널은 전자를 가리킨다.
뉴욕채널은 자신들이 상대하는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을 보였다. 이들은 "북한이 원리에 입각해 있는 반면 미국은 현상에 매달려 있다"며 그간의 대화가 겉돈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우리 민족은 얼굴에 뾰루지가 나도 원인을 찾아 치료하지만 서양(미국)은 뾰루지 자체만 치료한다"고 비유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득권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의 총기 규제도 하지 못하는 마당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유엔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유엔이 뭐냐, 유나이티드 네이션스 오브 아메리카(United Nations of America) 아니냐"고 되물은 뒤 "유엔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조종당한다"고 비꼬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와 제재조치를 미국의 압박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들은 "우리의 타깃은 미국이지 남한이 아니다"면서 "우리 (미사일) 무기에 '철천지 원수 미국에게'라고 적었지 '미국과 남조선에게'라고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에서 뉴욕채널이 한반도에서 긴장 상황이 계속되는 시점에 남북대화를 언급한 것은 북한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계기로 평가된다. 이들은 남북대화가 6ㆍ15공동선언에 입각해 진행될 수 있다면서 "외세를 끼우지 말고 우리끼리 하면 된다"고 말했다.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망상(妄想)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는 케리 국무장관 체제에서 북미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우회해 나타낸 것으로 읽힌다. 뉴욕채널은 또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가 강한 입장에 서서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몇 년 대화를 해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유리한 국면에서 대화한다는 북한식 대화법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통일된 미래 시대에 서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언론과 관련해 뉴욕채널은 "남쪽에서는 '조중동'의 이야기만 나온다"며 한국 신문 상황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현상만 보고 근본 원인은 보지 않는다"거나 "상식은 난무하지만 지식은 없다"며 한국 언론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북한 입장을 소홀히 하지 않는 진보언론이 있지 않느냐"고 묻자 답변을 하기에 앞서 이들 언론을 '소위 진보'라고 정정한 뒤 "이들이 오히려 북한에 대한 반감을 사게 한다"고 의외의 발언을 했다.
뉴욕=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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