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풍경이다. 다방 같은 데서 "김사장님, 전화요!"하면 여러 명이 동시에 뒤돌아봤다. 요즘은 핸드폰시대라 그렇게 부를 일도 없겠지만, 만약 "김박사님, 전화요!"하면, 상당수가 뒤돌아 볼 것이다. 수십만명에 이른다는 박사들 중 십중팔구는 "나랑은 상관없다"며 억울해 하겠지만, 나머지 10~20%는 속이 뜨끔할, 아니 뜨끔하게 느끼기나 했으면 좋을 얘기를 하나 하겠다. 검찰 정부고위관료 국세청 경찰 재벌그룹고위직 등 이른바 '쎈' 사람들 얘기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마다 단골소재가 병역 부동산 탈세 표절 등이다. 아이들 학군 좋은데 보내려거나, 재개발소문(또는 정보) 듣고서 위장전입한 '주민등록법위반' 쯤은 이제 얘깃거리도 안된다. 주요 관직후보자들, 박사는 기본이다. 이력서 꼼꼼히 살펴보면, 거의가 재직중 학위를 땄다. 근무지이탈에 해당하니까 일과시간에 학교 갔을 리는 없었을 테고, 휴직해가면서 공부했다는 소리 들어보지 못했다. 주경야독인 셈이다.
몇몇 대학들은 '유력해 질' 인사들에게 수업료를 깍아주거나 안 받으면서 "가끔 출석만 하면 된다"라고들 하는 모양이다. 대학이나 해당 인사나, 서로 마다 할 이유 없는 '거래'다. "솔직히 간판(학위) 따고 인맥쌓으러 가는거 아니냐. 등록만 하면 논문도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도 있고 알아서 다 해결된다더라"는 어느 고위관료의 얘기는 차라리 정직하다. '쎈' 기관 사람들은 지위가 올라가 힘이 커질수록, 그런 과정을 거쳐 이력서용 견장 하나씩을 더 다는 수가 많다. 재직중 기관장 자리까지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옷 벗고 나면 로펌이나 산하기관장, 감사 등으로 옮겨 연봉이 수억 씩 되기도 한다. 가끔은 '별장' 같은 데 가서 '쇼킹 접대'도 받는 모양이다. 그러다 정권 바뀌거나 인사철 되면, 그 중 일부는 출신 부처에 수장으로 금의환향 한다.
2006년 김병준 당시 교육부총리후보자는 교수시절인 1987년 제자의 학위논문을 표절해 학회지에 발표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취임 13일 만에 물러났다. 의혹에 대해 나름대로 책임을 진 셈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허태열 청와대비서실장, 윤성규 환경부장관, 이성한 경찰청장 등이 또 여지없이 표절시비에 휘말렸다. "각주 인용상 단순실수"라거나, "논문주제는 내가 잡은 거니까 표절은 아니다"는 옹색한 변명부터 "송구하기 이를데 없다"는 조아림으로 청문회를 통과한 뒤 다들 버젓이 취임했다.
어렵다는 고시 패스해서 입신양명한 사람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올림픽에서 '태권 영웅'으로 국위를 떨치고 IOC위원까지 올랐던 문대성씨는 작년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논문표절이 불거져 복사기 제조업체인 '신도리코'에서 빗대온 '문도리코'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해당 대학은 표절을 공식확인했고, 문씨는 의원직사퇴요구에 시달렸다. 그러나 '새누리당 탈당' 선으로 유야무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의원직 유지하고 있다.
나라의 체면, 즉 '국격'은 정직함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외국에서는 표절은 '범죄'다. 작년 헝가리의 슈미트 팔 대통령은 박사논문표절이 밝혀지자 학위박탈은 물론이고 하야까지 했다. 독일에서도 재작년 국방장관(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과 교육장관이 표절시비 끝에 장관직사퇴와 학위박탈이라는 이중처벌을 받고 영구 불명예퇴장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우면서 '지식재산 생태계확립'을 국정 주요과제로 설정했다. 그 정책을 수립‧집행할 관료들 중 과연 부끄럽지 않을 이, 몇이나 될까.
거짓-과대포장으로 얼룩진 우리사회의 치부를 보여주는 표절시비 와중에 눈길 끈 사람이 하나 있다. 문대성씨처럼 '태권 소녀' 출신으로 톱배우인 김혜수다. 김혜수는 표절 시인 후 학위반납을 선언했다. 그의 정직한 선언 앞에 표절시비 박사들 부끄럽지 아니한가. 최근 몇몇 대학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해 표절여부를 가리겠다고 나섰다. 표절로 밝혀질 경우 어떤 행정‧정치적 조치가 취해질 지 지켜보겠다. 법질서확립과 신뢰가 현 정부 최대브랜드 아니던가.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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