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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슬과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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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슬과 제주어

입력
2013.04.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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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는 가늘고 날카로워 바늘 끝같이 찌르며 알아들을 수 없다."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 온 학자 김정은 에서 제주어를 다른 나라 말 같다고 했다. 숙종 때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도 에서 비슷하게 묘사했다. "시골 여자들이 관아에 고소하는 것은 재두루미 소리 같다. 반드시 서리들이 번역해야 알 수 있다." 소리가 크고 음절이 짧은, 그래서 둔탁한 듯 들리는 제주어의 형성과정에는 바람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제주 문학작품에는 보석 같은 제주어가 풍성하다. '엉덩이는 허공에 대고 괄락괄락' '옷 몬뜰래기 벗어 두고'(문충성 시집 ). 괄락괄락은 물을 비우는 소리고 몬뜰래기는 '홀랑'이란 뜻이다. 제주 출신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감칠 맛 나는 제주어들을 접할 수 있다. '자리젓이 맨조팝 맛을 더해주었다'(현길언 ) '쑤어나라 쑤어나라 요놈의 잡귀야'(현기영 ). 맨조팝은 좁쌀만으로 지은 밥이고 쑤어나라는 잡귀를 내쫓으며 하는 말이다.

■ 언어학자들은 제주어를 '고어(古語)의 보물창고'로 부른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아래아(ㆍ), 반치음(△)과 중세에 사용하던 어휘가 상당수 남아있기 때문이다. ㅁㆍㄹ(馬), ㄷㆍ리(橋), ㅎㆍ루(一日) 등이 그 예다. 제주 노인들은 "ㄷㆍㄹ 솟앗저(달(月) 솟았다)"와 "돌 솟앗저(돌(石) 솟았다)"를 정확히 구분해 발음한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2010년 제주어를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로 분류했다. 증조부 세대의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해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본 것이다.

■ 제주 4ㆍ3사건을 다룬 영화 이 주는 또 다른 묘미는 제주어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고 처연한 흑백의 영상미에 더해져 영화가 더욱 빛을 발한다. 자막 처리된 대사를 보지 않고 소리만 듣고 있으면 구성진 노랫가락을 듣는 듯 하다. 제주도가 2010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방언에 관한 조례인 '제주어 보존 및 육성 조례'를 제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차원에서 제주어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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