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압도적 기량을 선보이면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더 성숙해진 연기력과 여전히 탁월한 경기력으로 올림픽 2연패의 청신호가 켜졌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피겨의 신은 일본에 아사다 마오를 보냈다. 그리고 한국에는 자신이 직접 내려왔다."
아사다 마오도 잘하나 미안하게도 김연아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다는 얘기. 우리가 언제 다시 김연아와 같은 선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척박한 피겨 환경에서 말이다. 자비를 들여 해외전지훈련을 하고 포상금 지급 여부로 연맹과 갈등이 있음에도 기량을 유지하는 박태환 선수는 어떤가. 이런 문제들을 언론에서는 이미 지적하며 제2의 김연아나 박태환이 나오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제시했다.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고, 선수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책을 마련하자고. 벌써 몇 년째다 그런데, 저변이 확대되고 많은 사람들이 피겨스케이팅나 수영을 하면 나중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나올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보자면 김연아나 박태환은 블랙스완이다. 백조와 같이 우아한 존재란 말이 아니다. 1697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가 발견되기 전까지 백조는 흰색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다. 블랙스완은 그 후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나심 탈레브는 이를 모티브로 경제공황이나 구글의 성공과 같은 사건을 설명하기도 했다.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하기 어렵고, 또 일상적인 방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특이한 사건이 발생하는 일이 있고, 그로 인한 파장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질때 블랙스완이라고 한다.
나는 두 선수의 출현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선수가 많아지고 생활체육으로 저변이 넓어지면 피라미드 정점 수준의 세계적인 선수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렇다면 피겨스케이팅이 일상화되고 동네마다 스케이팅장이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매년 우승을 독식해야 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모델에서는 중상급의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데에는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김연아 선수급의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해질 만한 천재적 기량을 가진 선수의 출현을 예측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냥 이런 선수는 블랙스완과 같이 타고난 우연의 산물이라고 봐야한다. 안타깝고 불공평하고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의 김연아나 손연재, 박태환을 기대하는 것과 생활체육을 활성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분리해야한다는 것이다. 생활체육의 저변을 늘리는 것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 즐기고 행복해하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을 한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선수 발굴과 양성을 장기적 목표로 한다면, 실제 운동을 하면서 생기는 부담과 달성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목적으로 인해 어떻게 해도 만족을 하기 어려워지고 그 활동 자체가 재미가 없어질 위험이 있다. 김연아도 못될텐데 뭐하러 돈을 들여 스케이팅을 하냐는 좌절감을 느낄 위험도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다른 심리는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얻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단적인 추론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매번 김연아나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난 다음에 판에 박힌듯 따라 나오는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척박한 환경과 이에 대한 후속대책들이 사실은 이상적일뿐,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고 도리어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은근한 부담과 스포츠의 즐거움을 뺏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고 평범한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우리대로 즐기면 된다. 재미로 스케이트를 시작한 아이에게서 미래의 김연아를 보고싶어하는 부모의 은근한 기대의 눈을 거둬야할 때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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