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인해 구제금융을 받은 키프로스가 자국 젊은이들의 대규모 해외 이주로 인해 '잃어버린 세대'의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 두뇌유출이 경제회복을 더디게 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지만 살 길을 찾아 떠나려는 젊은이들을 막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키프로스 금융계에서 2년 동안 일해온 안젤로스 페르디오스(25)는 3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키프로스의 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영국이나 미국으로 떠나려 한다"며 "2주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키프로스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민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바실리키 이야니(24)는 "모두들 이민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발전소가 날아가버린 것 같은 심정이고 여기 키프로스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키프로스처럼 구제금융 위기를 겪은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도 젊은이들의 해외 러시가 심각한 수준이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해외로 빠져나간 이민자가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구가 420만명 정도인 아일랜드는 지난해 8만7,000명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난 것으로 추정되며, 함께 떠났지만 집계에서 제외된 무직의 피부양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고 아이리시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아이슬란드도 구제금융을 받았던 2009년 이민자가 10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섬나라의 공통점은 경제 규모에 비해 은행산업이 비대하다는 점이다. 키프로스만 하더라도 1980년대 이후 대규모 해외 고객을 유치해 은행산업이 커졌으며 키프로스의 고학력 젊은이들은 은행산업에 기반한 회계사, 변호사, 펀드매니저 등의 고액 연봉 일자리를 영위했다. 키프로스의 대학 진학률은 약 50%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여섯번째로 높은데 대부분 다른 EU 국가에서 대학을 마친 뒤 귀국해 금융산업 쪽에 종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키프로스 은행산업의 몰락은 국가 기반을 흔들고 있다. 두번째로 큰 라이키 은행을 청산하기로 하면서 예금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10만유로 초과 예금자의 손실률은 최대 6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애초 37.5% 가량 손해를 볼 것으로 알려졌으나 키프로스 정부가 은행 건전성 회복 목표를 토대로 재산정한 결과 손실률의 규모가 훨씬 커졌다.
키프로스 내 회계사무소 대표인 코스타스 아프젠티우는 "젊은 세대가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내 아들도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뒤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귀국을 무기한 연기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키프로스의 장관들은 "두뇌 유출이 경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페르디오스는 "키프로스에 미래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적어도 2년 혹은 3년, 아니면 5년은 힘든 시기가 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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