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진열대를 설치하고 위생 관리를 엄격히 해 우수업소로 지정된 문구점에서만 식품을 팔 수 있습니다."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문구점 내 식품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업계 반발이 커지자 우수업소 판매는 허용하겠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불량식품 퇴출 논의가 문구점 규제 논란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국민 먹거리 안전 강화 차원에서 '처'로 승격된 식약처가 불량식품과의 첫 전투부터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1일 서울시내 초등학교 주변 문구점을 직접 둘러보았다. 쫀득이ㆍ맥주맛 사탕ㆍ정체불명의 젤리 등 일명 '불량식품'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약처가 기준으로 제시한 문구점의 위생 상태나 진열대의 유무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작 문제는 중국 인도네시아 소재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제조사,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적힌 영양성분표, 이름만으론 어떤 용도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첨가물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색과 싼 가격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문구점이 아니라도 수요만 있다면 어딘가에서 충분히 팔릴만한 것들이다. 이런 제품들을 그냥 놔둔 채 유통시키는 문구점만 잡는다고 해서 불량식품이 퇴출될 수 있을까.
물론 대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불량식품을 고의로 제조ㆍ판매하다 적발되면 매출의 10배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구 퇴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구점에서 팔리는 불량식품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우선 문구점에서 팔리는 식품이 제대로 된 것들인지, 현재 식약처의 식품안전기준은 적절한지부터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예컨대 대부분 불량식품에 들어가는 '식용색소 황색4호'는 알레르기 등을 유발해 미국 등에서는 사용 금지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제재 조항이 없어 과자나 사탕 등에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문구점에서 식품을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처벌 강화만이 능사도 아니다. 식약처가 불량식품과의 전쟁에서 성공하려면 칼을 엉뚱하게 휘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승임 사회부 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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