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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 상황 속 남북 배우가 ‘소통 실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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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 상황 속 남북 배우가 ‘소통 실험극’

입력
2013.03.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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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운운하는 북한의 위협에 한반도 기류가 영 수상한 이 시절에, 남과 북의 배우가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실시간 소통을 시도하는 희한한 접선이 지난 주말에 있었다. 중국 연변의 모처와 서울의 공연장에 설치된 두 벌의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 스크린 장치가 양쪽을 연결했다. 화상 통화처럼 진행된 건 아니다. 장치들은 접선 중임을 알려줄 뿐 고의적, 역설적으로 완전한 만남을 방해했다. 그럼 무엇으로 소통했느냐. 황당하게도 텔레파시다.

북한이 전시 상황 돌입을 선언한 30일과 31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단 2회 공연으로 끝난 이 별난 즉흥 실험극은 그 자리에 있던 100명이 안 되는 관객만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켜본 증인이 되었다. 북한 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사진과 영상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출연자는 남과 북에서 각 2명. 북쪽 배우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북한과 거래하는 밀수업자를 통해 소개 받았다고 한다.

'X: 나는 B가 좋던데. Y: 나도 스물아홉이야.'라는 제목부터 어리둥절한 이 작품은 남과 북의 텔레파시 실험이다. 지구촌 노마드로 살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황(33)과 그의 동료 사라 마넨테, 마르코스 시모즈가 연출했다. 연극과 퍼포먼스, 영상 설치가 뒤섞여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전 장르에 걸쳐 진보적인 현대예술을 소개하는 페스티벌 봄의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15분씩 4막으로 돼 있다. 1막에서 X와 Y는 상대방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몸짓만으로 대화를 나눈다. 둘은 각자 주변의 물건을 갖고 놀면서 움직임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움직임은 서로 엇갈렸다. 우연히 거의 동시에 맞아 떨어지기도 했다. 2막은 서로 볼 수 있지만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말로 하는 대화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는 동문서답의 연속. 오해 때문에 화를 냈다가 더러 통하기도 했다. 3막과 4막은 X와 Y가 송신자와 수신자를 번갈아 가며 하는 텔레파시 실험이다. X가 Y 에게, Y 가 X에게 일련의 행동을 주문하지만, 지시 내용이 뭔지는 관객만 안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엉뚱한 상황에 안타까움과 폭소가 교차했다.

이 작품은 소통, 우연성, 남북 문제 등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남과 북의 배우들이 동문서답을 주고 받다가 기적처럼 통하기도 하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럽지만 슬픈 소동이다. 남과 북은 그만큼 멀어지고, 소통은 막혔다. 전쟁 위기론 속에 남북한 간 핫라인마저 끊어진 현 상황을 텔레파시 교신으로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작가 김황은 2011년에도 북한과 소통을 시도하는 작품 '모두를 위한 피자'를 페스티벌 봄에서 발표해 화제가 됐었다. 피자 만들어 먹는 법을 담은 동영상 CD를 제작해 암시장을 통해 북한에 뿌리고 이를 본 북한 주민들이 보내온 반응을 퍼포먼스로 재연한 작품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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