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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90도 휜 할머니, 50여년 만에 허리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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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90도 휜 할머니, 50여년 만에 허리 폈다

입력
2013.03.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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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혼자 걸어다니고 두 발로 서서 샤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몰라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질병인 척추하수증 때문에 수십년간 허리가 굽은 채 살던 70대 할머니를 국내 의료진이 완치시켰다. 척추가 분리돼 빠져버리는 척추하수증은 한 나라에서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병으로 고령자 수술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고된 적이 없다.

할머니의 인생은 허리와의 전쟁이었다. 50여 년 전 결혼 직후 허리 위로 드럼통이 떨어졌다. 원래 허리가 약했는데, 사고 이후 더 악화했다. 그래도 겉으로 별 문제가 없었고, 통증도 견딜 만해서 점점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걸을 때마다 뒤뚱거리고, 오리궁둥이처럼 엉덩이가 뒤로 튀어나왔다. 60대 들어선 허리가 90도로 휘고 통증도 심해져 급기야 방바닥을 기어다닐 지경이 됐다.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고 대학병원도 여러 곳 가봤지만,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아예 걷기조차 힘들고 소변장애까지 생기자 할머니는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우울증이 찾아왔고, 남편과 아들 내외도 점점 희망을 잃어갔다. 그러다 뒤늦게 2010년 강동경희대병원을 찾았다.

수술을 집도한 강동경희대병원 척추센터 신경외과 조대진 교수는 할머니를 처음 진단했을 때 "어떻게 서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척추뼈 연결 부위가 헐거워지는 척추분리증은 정도에 따라 Ⅰ~Ⅴ등급으로 나뉘는데, 가장 심한 Ⅴ등급이 척추하수증이다. 연결 부위가 아예 끊어지는 것이다. 조 교수는 할머니가 "선천적으로 척추분리증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사고가 증상을 더 키웠을 거란 얘기다.

척추분리증은 주로 선천적이거나 심한 운동으로 생기고, 보통은 젊을 때 수술로 좋아진다. 그러나 척추하수증까지 가면 완치가 어렵다. 조 교수는 "국제학계에 보고된 척추하수증 수술 환자는 대부분 10~30대였는데도 많은 경우 하지마비가 왔다"고 말했다. 뼈가 약한 고령자는 수술이 특히 어렵다. 할머니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골다공증이 심했다. 하지만 방법은 수술뿐이었고, 무엇보다 할머니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수술하길 간절히 바랐다.

조 교수는 빠진 척추에 눌린 신경을 풀고 척추 뒤쪽에 고정용 나사를 박았다. 그런 다음 푸석푸석한 수술 부위 뼈에 할머니의 골반뼈 일부를 빼다 이식했다. 이식된 뼈를 고정시키려고 다시 척추 앞뒤에 나사를 끼웠다. 수술 후 재활훈련을 받은 할머니는 2개월 만에 퇴원했다. 조 교수는 "2년 뒤 이식된 골반뼈가 (척추에)붙어 굳은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모두 포기했지만, 조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내 삶의 기초를 다시 세워줬다"며 고마워했다. 이 수술은 유명 학술지 '저널 오브 서저리 스파인'에 지난해 2월 실렸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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