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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동물도, 관람자도 약육강식에 휘둘리는 생명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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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동물도, 관람자도 약육강식에 휘둘리는 생명일 뿐…

입력
2013.03.2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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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동물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 두 영역은 콘크리트나 나무담장 창살 해자 강화유리 등으로 겹겹이 차단돼 있다. 포식자와 피식자로 마주칠 수도 있는 두 무리는 그 경계로 하여 상호 불가침의 절대 영역을 확보하고, 평화로운 관람자와 피관람자의 관계로 마주 선다. 그 경계는 맹수를 가두는 장치이지만, 치명적인 해코지가 될 수도 있는 인간의 '장난'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경계의 안은 방사장(放飼場)이다. 둥치를 보호철망으로 둘러놓은 나무와 작은 웅덩이, 콘크리트로 꾸민 가짜 절벽, 크고 작은 바위들…. 그럴싸하게 꾸며진 방사장의 유사(類似) 생태계는 동물들의 최소 생활권을 보장하려는 동물원 측의 배려인 동시에 야생의 스펙터클에 대한 관람자의 기대를 최대한 배려하기 위한 무대장치다.

그렇게 동물원은 공간 자체가 안고 있는 숙명적 이중성 위에 서 있다. 즉 야만과 문명,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호혜의 공간이면서 생물학적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형식 공간이다.

지난 주말 이른 오전의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덜 풀린 날씨 탓인지 관람객은 얼마 없었지만 사육장의 문이 열리는 직후인 그 때가, 먹이 주는 시간과 함께, 가장 박진감 넘치는 관람시각이라는 걸 아는 이들은 안다. 밤새 실내 우리 안에 갇혀 있던 동물들이 기민하게 제 영역의 안녕을 살피며 옅어진 체취를 짙게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계절의 감성에 인간보다 훨씬 민감한 동물들은 새봄맞이 준비로 제법 활기차 보였다. 겨우내 실내에 있었을 열대 맹수들은 호쾌한 기지개로 굳은 근육을 풀거나 꾀죄죄하게 엉킨 털을 핥으며 몸 단장에 여념이 없었고, 2주 전쯤 출산했다는 어미염소는 그새 제법 몸집을 키운 아기 염소를 달고 울타리 안 여기저기를 순찰하듯 거닐고 있었다. 호랑이 우리 한 켠에서는 개나리 색 외투를 입은 한 케이블 방송국 기상캐스터가 동물원의 봄기운과 동물들의 역동성을 부풀려 소개하며 날씨를 전하고 있었다.

사자와 호랑이가 오전 일과를 마치고 볕 좋은 자리를 차지한 채 널브러질 정오 무렵, 관람객은 인파를 이루고 있었다. 까끌까끌한 혀의 감촉이 신기한 듯 사슴 주둥이에 연신 손을 내주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육중한 맹수들의 나른한 하품이 자아내는 경외감 어린 탄성들…. 연신 까불며 뛰어다니던 망토원숭이의 재롱에도, 박제처럼 굳어있던 악어들의 작은 움찔거림에도 환호가 이어졌다. 동물들보다는 만난 지 백일 됐다는 여자친구에게 더 넋이 나간 듯한 청년의 달뜬 표정, 제 몸통만한 풍선을 든 채 다른 손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가는 소녀의 다급한 발걸음,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의 한가로운 담소…. 'OO야, 엄마 여기. 봐봐~ 찰칵.'동물원은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거렸고, 왁자한 소음으로 그득해졌다. 후미진 자리의 휴지통 주변에 모여선 몇몇은, 금연 표지판을 마주보기 죄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모든 물리적-이념적 대치 국면에서 경계를 긋는 권리는 강자의 몫이다. 코끼리 다음으로 넓은 터를 차지한 호랑이지만 세 마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30평에 불과하고, 북극곰도 야생에서 누렸을 공간의 100만분의 1도 안 되는 우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 분절된 생태 공간 안에 갇힌 사자는 더 이상 맹수도 백수의 왕도 아니어서, 기린이나 낙타와 다를 바 없이 저들끼리의 서열 다툼에 만족하며 정량의 먹이를 제 때 배급 받는다. 동물원은 수많은 호혜의 위장막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과 배후에 놓인 저'인간적'인 원리를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공간이다.

경계의 가장 안쪽, 그러니까 창살과 방사장 배후의 사육장은 동물들의 내실(內室)이지만, '인간적'인 민낯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역한 배설물 냄새, 어둡고 비좁은 자리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조차 들지 않는 동물들. 기자를 안내한 사육사는 "열악해 보일지 모르지만 동물원 사육장의 평균적인 환경에 비해 그리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라며 겸연쩍어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무정란만 낳는 타조, 의미 없이 우왕좌왕하는 등 전형적인 '정형행동'을 반복하는 푸마, 낮밤을 잃고 하루가 길어진 하이에나와 올빼미, 먹이를 일일이 입에 넣어줘야 먹는다는 악어…. 겨울잠 자는 동물이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반달가슴곰들도 겨울잠을 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사육사는 "다들 여기 환경에 적응이 돼서 괜찮다"고 말했다. 코끼리 우리 안 철문에는 쇠로 된 가시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운신조차 힘든 실내에서 코끼리들은 관람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을 머물러야 하고, 방사장에 못 나가는 날이면 꼬박 하루를 더 갇혀 지내야 한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콘크리트 기둥이든 벽이든 닥치는 대로 들이받으며 위협적으로 구는 데다 동물원을 탈출해 인근 식당가를 유린한 이력도 있는 녀석들이라 부득이 쇠 가시들을 박아뒀다고 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무료 시설이다. 그래서 소요경비 거의 전액을 서울시 예산에 의존한다. 전체 동물 수는 95종 4,100여 마리. 사료 값만 연 4억6,000만원이 들지만 동물원 규모에 비해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니라고, 근래엔 사자만 해도 최근엔 토끼고기 값이 비싸져서 닭과 캥거루 고기만 주고 있다고, 사육사는 말했다. "동물들과 사육사의 스킨십이요? 그거 대부분 낭만적인 창작이거나 공연장처럼 예외적인 곳의 이야기일 겁니다. 2명이 매일 교대하며 10개 남짓씩 되는 사육실과 방사실을 청소하고 시설 관리하기도 벅차요."그렇게 말했지만, 거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속상함도 느껴졌다.

생태주의의 확산과 함께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원을 바라보자는 주장도 근년 들어 힘을 얻고 있다. 정말 야만적고 잔인한 동물은 창살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고 말한 이도 있다(스웨덴 작가 악셀 문테). 동물원 형식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인간의 위선에 대한 경멸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저런 인식에 대해 동물원이라고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역설이든 뭐든 생태적 가치에 대한 교육적인 기능을 하고 있고, 이미 건강한 생태계를 빼앗겨버린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인공 번식 등의 방법으로 생명자원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반론으로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 동물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공원 동물공연장(애니스토리)에서 공연 '피터팬'이 시작됐다. 악당 후크로부터 애니랜드의 동물가족 20여 종을 지켜내는 이야기. 요정 옷을 입은 원숭이가 팅커벨을 맡았고, 가족들이 호명될 때마다 동물 가족들이 저마다의 장기를 자랑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오리 앵무새 비둘기 학, 물개…. 아이와 함께 공연을 본 박선영(33)씨는 "어른들도 충분히 즐기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다. 어떻게 저런 훈련을 시켰는지 신기하다"고 말했다.

조련사겸 공연기획자인 김준수(53)씨와의 인터뷰.

-공연 준비에 얼마나 걸리나?

"최소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그렇게 만들어 1,2년 가량 공연한다."

-가장 힘든 부분은?

"동물이 아플 때다. 동물이 많지 않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가급적 A,B조로 나누어 연습하고 공연한다."

-훈련은 어떻게?

"습성을 이용한다. 새들의 귀소본능 같은 거다."

-학대라는 얘기도 있던데?

"동물들은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저 동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우리 목표다."

-동물원 동물과 여기 동물의 차이는?

"여기 동물들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수익을 창출해 다시 동물원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 만큼 더 잘 돌본다. 요새 동물단체들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기사 좀 잘 써달라."

몇몇 나라의 경우 동물원 동물의 권리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도 있다. 대한민국에는 동물원 시설에 대한, 동물을 배려하기 위한 그 어떤 법적 기준도, 제재수단도 없다. 인권ㆍ동물권 구분을 넘어서서 생명권이라는 상위 차원에서 생명 윤리를 고양하자는 논의는 우리 현실에선 아직 성급하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을 핑계로 현실을 외면하는 한, 우리 안의 동물들에게 자신을 투사하게 될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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