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만난 배구와의 만남은 숙명이었다.
이정철(53) IBK기업은행 감독은 창단 2년 만에 전무후무한 통합우승을 이끌며 정상에 섰다. 고교 시절 뒤늦게 배구를 접한 이 감독이 '핵폭탄급 태풍'을 일으킬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감독은 "핸드볼 축구 육상 탁구 등 안 해본 게 없다. 인천체고를 특기생으로 갔는데 맞지 않아 결국 28일 만에 자퇴서를 냈다"며 "우연히 배구를 접했는데 배운 지 1년 만에 경기를 뛰게 됐다"며 배구와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결국 그는 청석고 졸업 후 배구명가 성균관대에 입학했고, 서울시청 등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2년 효성에서 코치를 시작한 이 감독은 21년간 줄곧 '여탕'에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2001~03년 흥국생명 감독을 거쳐 청소년대표팀(2004년)과 성인대표팀(2007~08년)까지 역임했다. 2010년 신생팀 IBK기업은행 지휘봉을 잡은 그는 V리그 참가 두 시즌 만에 통합우승을 일궈내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이 감독의 별명은 '독사'. 철두철미한 관리와 지옥 훈련으로 악명이 높다. 기업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누가 왔는지 일일이 체크하는 건 기본이고, 선수들 숙소 옆에서 코치들과 함께 생활하며 우승의 꿈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은 "평생 악역이어도 좋다. 엄한 선생님이 되겠다. 그리고 우승이 확정되면 선수들에게 매를 맞을 용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사'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선수들이 시즌이 끝나면 쇠몽둥이로 때리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이 감독도 우승하면 맞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기업은행의 선수 구성과 훈련 방식은 남자부의 '삼성화재'를 많이 닮았다. 이 감독은 성대 5년 선배인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을 '롤모델'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리베로 남지연, 수비형 레프트 윤혜숙을 삼성화재의 여오현, 석진욱에 빗대기도 했다. 이 감독은 수시로 신 감독을 만나 선수단 운영과 관리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기업은행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우승했다. 전용 훈련장이 없어 수원의 부일여중에서 '셋방살이'를 한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해 "우리는 신혼이다. 사글세부터 시작했지만 전세도 얻고 집도 살 것"이라고 비유했다. 비록 모든 게 열악하지만 남지연과 윤혜숙을 영입한 덕분에 이 감독은 "오랫동안 꿈 꿔왔던 배구를 이번 시즌에는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은행을 여자배구 명가로 만들려는 이 감독의 소망은 우승으로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윤재섭 기업은행 부단장은 "조준희 행장님이 기업은행의 기흥연수원에 전용 구장 건립을 약속했다. 행장님뿐만 아니라 전직원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환경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여자배구에만 헌신했던 이 감독은 우연한 만남을 숙명으로 꽃 피우고 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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