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kg 거구로 변해버린 후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감정·사랑동생 시선으로 전하는 영국 소설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성장에 도달하는 나이는 대략 몇 살 정도가 적당할까. 빌둥스로망(Bildungsroman)으로 세계문학사에 성장소설의 전통을 구축한 독일의 경우를 보자. 괴테의 와 이 성년기의 청년을, 토마스 만의 와 헤르만 헤세의 이 각각 사춘기의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성장이 완료시제는 아니지만, 이것이 성장소설에 관한 우리의 상식이다.
영국의 신예작가 데이비드 화이트하우스(32)가 스물 아홉에 쓴 첫 소설 는 20년 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마흔 다섯 살 남자의 이야기다. 블랙코미디가 절로 짐작될 법한 소재지만, 소설은 깊고도 슬프다. 그 슬픔은 우리 인생의 성장이 지체되고 또 지체되어 어쩌면 죽음 이후에야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사랑도 야망도 이 생에는 나의 것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생기고 똑똑했지만 과잉행동장애와 흡사한 행동들로 늘 소란을 피웠던 소년 맬컴 에드. 그는 스물 다섯 번째 생일날 침대로 들어가 생의 리모컨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성장을 거부한다. ‘난 의자에 앉아서 일해. 컴퓨터 게임을 통해 누군가와 싸우고. 투표를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가 버는 돈만으로 원하는 것을 살 수도 없지. 난 목적도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을 만들어주는 일만 하고 있어.’(184쪽) ‘이런 게 진짜 삶이라면, 굳이 침대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이유다.
소설은 635킬로그램의 의학적으로 치명적인 뚱보가 된 마흔 다섯 살의 맬컴이 20년 만에 침대 바깥으로 나오기까지 그와 그의 가족, 연인이 겪는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맬컴이 침대로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겠다는 자신의 선언을 무력하면서도 집요하게 실천하는 과정을, 질투와 분노와 연민이 뒤범벅된 시선으로 지켜보는 동생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635킬로그램의 몸을 묘사하는 화자의 서술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로 읽는 이를 압도한다. 인간에서 거대한 식물로 변해버린 맬컴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의료장치와 마치 참전 간호사처럼 형의 몸 구석구석을 닦고 치료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모습이 읽고 있으면 후각마저 자극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이 ‘변신 서사’의 또 다른 중심축은 러브스토리. 화자인 ‘나’는 어릴 적부터 ‘맬컴의 동생’으로만 기억되는 무명의 존재였다. 실제 소설에서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나’는 십대 시절 형을 좋아하는 아름다운 소녀 루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나’의 방해에도 독특한 매력의 소년 맬컴과 아름다운 루는 어느덧 사춘기의 연인이 돼 있다. 이 어긋난 사랑은 무려 30년 넘게 지속된다.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루의 고통과 사랑을 안으로만 삭여야 하는 ‘나’의 고통, 이 둘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맬컴의 고통이 지독한 사랑의 삼각형을 형성하며 길고도 음울하게 이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우울이라는 정서의 원산지가 영국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할 정도로 한결같이 침울하고 무기력하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대신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선택한 맬컴. 사랑에 실패하고 죽을 때까지 형과 한 방에서 살 운명이라고 자포자기한 ‘나’, 탄광사고의 생존자로 그 기억에 짓눌려 있는 아버지….
하지만 이 길고도 깊은 우울은 마지막 대반전의 폭발력을 응집하기 위한 기나긴 서곡이었다. 이들의 유예된 성장의 방아쇠를 다시 당기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지붕이 해체되고 드디어 형을 집 바깥으로 꺼낼 기중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두 형제가 눈물을 쏟으며 대화를 주고 받는 마지막 장면은 전율마저 느껴진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저자는 이 첫 번째 소설로 출간 전 원고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투 헬 위드 프라이즈’상과 35세 이하 작가의 데뷔작에 주는 ‘베티 트라스크’상을 받았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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