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경제에 대해 이틀 연속 강도 높은 우려를 쏟아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29일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12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며 이를 방치할 경우 하반기엔 한국판'재정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정절벽이란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갑작스럽게 줄거나 중단돼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이다. 전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3%로 대폭 낮춰 '성장률 쇼크'를 불러온 데 이어 미국처럼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충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이는 MB정부의 잘못된 예산 책정과 안이한 경기 인식과 확실히 선을 긋고 새로 출발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조 수석은 "작년 예산안을 짤 때 재정균형을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세입예산을 과다하게 늘려 잡았다"고 인정했다.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도 전날 경제전망치를 크게 낮춘 데 대해 "작년 12월 3% 성장률을 전망할 때도 하방 위험은 있었지만 정책 노력으로 달성 가능하다고 봤다"며 사실상 당초 무리한 전망치였음을 고백했다.
문제는 전 정권의 정책이 잘못됐다며 수정하려는 책임자들이 과거 정책 결정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인물들이란 점이다. 12조원의 세수가 부족하다고 밝힌 이석준 차관은 당시 재정부의 예산실장이었다. 전날 발표한 경제성장률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12월과 지난 28일 180도 바뀐 경제전망을 발표한 최상목 국장은 1년 6개월째 재정부의 경제전망을 담당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도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현 부총리가 수장을 맡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9월까지 3.6% 라는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다 뒤늦게 2.5%로 전망치를 낮췄다. 작년 실제 성장률은 2.0%에 불과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조세연구원장이었던 조원동 수석 정도가 직접적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실명 밝히길 거절한 한 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모양새"라며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경제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는 관료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높은 신뢰도를 유지해야 할 경제관료들이 자기부정이란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감소하는 상황인데도 '증세 불가' 원칙을 고수해 경제관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대통령이 관료들과의 소통 없이 인수위의 공약실천만 강조하다 보니 관료들의 일관성이나 창의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김 국장은 "앞으로 정부가 발표하는 성장률 전망치를 누가 그대로 믿겠는가"이라며 "이런 관료들을 믿고 경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지 국민들의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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