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사를 했다. 옆 단지로 옮겨가는 것뿐이었지만 살림살이가 총체적으로 뒤흔들리고 경황이 없는 것은 원거리 이사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도시 고층아파트의 이사가 대개 그러하듯 사다리차가 동원됐고 육중한 트럭이 몇 대 필요했다.
이런 이사를 철들고 나서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대학에 입학한 뒤 고속버스 짐칸에 이불 보따리를 싣고 상경하면서 시작된 나의 이사는 학교 기숙사와 대학촌 원룸을 거쳐 경기권과 서울 주변부를 서성이는, 전형적인 서울소시민의 이동 동선을 따라 발전해갔다. 전통 천조각인 이불보를 사용해 보따리를 만든 뒤 트럭에 싣고 어릴 적 살던 곳을 찾아 길을 나서는 김수자의 영상 작품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1997)을 봤을 때, 나는 이건 내 이야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로는 계약금을 소매치기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대판 싸우기도 하면서 나의 영혼은 이사에 관한 한 강철처럼 단련되어 갔다고 해도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사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다. 어제까지 쓸고 닦던 마룻바닥이 사람들의 신발자국에 짓밟히는 것을 보는 마음도 그렇고, 백일하에 드러난 살림살이의 옹색함을 지켜보는 마음도 민망하긴 마찬가지다. 쏟아져 나온 그릇들은 모두 때가 묻어 있는 것 같고 마구 파헤쳐진 옷가지들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순간, 산다는 일의 거룩함과 서러움에 목이 메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힘든 일은 정리라는 미명 하에 한때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쓰레기로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협소한 아파트 공간으로의 잦은 이동으로 요약되는 도시에서의 이사는 버리기를 제 일 원칙으로 한다. 버리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초등학생 키 만한 100 리터 쓰레기봉투 여러 장이 사용된다. 한때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여행지의 여흥이 남아있는 기념품들, 크레파스가 어지럽게 칠해진 아이의 어릴 적 스케치북들,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길을 가다가 즉흥적으로 구입한 싸구려 옷들이 어느 순간 그 봉투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쓸모 없어진 수천 장의 자료 복사물들과 오래 된 책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사를 통해 이전의 나와 결별해야만 한다. 이전의 나를 둘러싼 추억, 그날의 흔적들, 소중했던 깨달음, 한때의 이야기들은 내 삶의 일부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가 이사와 함께 갑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어느 순간 폐기되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무언가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관하며 대를 이어 물려주는 삶은 이런 이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집안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은밀한 보물창고나 컴컴한 벽장에 보관되어 있는 사진첩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도대체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폐기된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끊임없이 이동을 강요하는 서울살이가 과거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고 추억으로부터 나를 추방한다고 투덜거리는 사이, 인터넷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터넷 선을 새로 연결해야하는 서비스를 신청해놓은 지 몇 시간 만이다. 아직 컴퓨터를 놓을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집안으로 기사 양반이 선뜻 들어섰다. 그리고 몇 분 만에 뚝딱, 인터넷을 개통해 놓았다. 그가 가자말자 지역 케이블 회사에서 찾아왔다. 그동안 시청하던 방송 대신 다른 서비스를 신청해놓았는데, 그 역시 몇 분 만에 해결이 되었다.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살림살이들 사이로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케이블을 매단 TV가 번쩍번쩍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러니 어쩌겠나. 과거 좀 망각하면 어떤가. 인터넷과 케이블이 있는데, 뭐가 아쉬울 것인가. 인터넷 덕분에 이 글도 빛을 보게 되는 것 아니겠나. 아, 아, 대한민국의 속도여, 이사여, 망각이여.
신수정 문학평론가ㆍ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신수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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