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자연은 오랫동안 바라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존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자연은 오랫동안 바라봐야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존재"

입력
2013.03.29 12:45
0 0

산업화 물결 속에서 실용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던 19세기 중반 미국의 문명비판사상은 생태주의가 도래하면서 당당히 권위를 되찾았다. 그 중심 인물이 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같은 사람이다.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문필가인 소로의 산문집 가 나왔다. 그가 20대 중반에 발표한 '매사추세츠 자연사'를 시작으로 1862년 4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뒤 공개된 '야생사과'까지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색, 예찬을 담은 모두 8편의 글을 담고 있다. 청년시절의 글이 절반이고 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말년에 쓴 글들이 또 절반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자연사 연구와 탐험이 유행했다. 소로가 자연관찰에 관한 글을 쓰고 그 글이 잡지 등에 실렸던 것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소로는 책에서 문명사회를 병든 사회라고 단언한다. 그는 '우리 발이 자연 가운데 서 있지 않으면 우리의 얼굴은 창백하고 납빛일 것'이며 '자연의 평정을 공유한 사람이 절망이나 영적 혹은 정치적 압제나 노역의 교리를 가르친 적은 없다'고 믿는다. '영국과 유럽 대륙의 주민들이 인구와 시장 독점권이 커짐에 따라 자신들의 자연권을 다소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소로는 그런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해 '모든 읍내에는 공원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통째로든 나뉘어서든 500 혹은 1,000에이커 규모의 원시림이 있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측량기사였던 그는 표제글에서 '사물들이 우리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시선이 가는 경로에서 벗어나 있기보다는 우리의 정신과 눈을 그쪽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이라며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관찰과 사색'을 통해 '과학적 진리와 시적 진리'를 결합하려 한 그의 관심사가 잘 드러난다.

글 중에서는 작가, 특히 시인들이 가슴 뜨끔할 이런 대목도 있다. '바람과 강물을 구슬려 그의 일을 하도록, 그리하여 그를 대신해 말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부가 봄에 서리가 밀어 올린 말뚝을 내리박는 것처럼 단어를 그 원시적 의미에 못을 쳐 고정할 수 있는 사람, 말을 쓰는 만큼 추론해내서 그 말들을 뿌리에 아직 흙이 묻은 채로 책장에 이식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너무 경도된 그의 생각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 삶이 더 자연에 순응한다면 아마 자연의 더위나 추위에 맞서 우리를 보호할 필요가 없을 테고, 식물이나 네발짐승들이 그런 것처럼 자연이 우리의 한결 같은 유모이자 친구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목 같은 것들이다.

봄이 오는 이 계절에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뭘까. 소로는 눈 덮인 겨울을 맞으며 '자연의 경이로운 순수함'을 예찬했다. '모든 바람에 몸을 내맡겨라. 어떤 계절이든 당신의 모든 구멍을 열어 자연의 온 기운을, 모든 하천과 대양을 들이마셔라.…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노랗게 무르익어라.…모든 자연은 매순간 최선을 다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318, 319쪽) 책을 덮고 창가로 시선을 돌리며 문득 봄이야말로, 문밖을 나서 조금만 관심을 두기만 하면 도처에서 자연의 경이를 발견할 시간임을 깨닫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