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들마다 아우성이다. 불경기가 계속 이어지고 심화되면서 매출이 3분의 1쯤 줄었다며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하소연이다. 만나는 출판인들마다 비슷한 걸 보면 엄살은 아닐 것이다. 생활고와 불안한 미래에 빠듯한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책 구매란다. 사실 책 무람하게도 읽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런데 불경기까지 덮치니 그 한파가 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출판사들로서는 바닥을 친 줄 알았는데 삽 주며 땅을 더 파내려가라는 꼴이다.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살아가는 데에 전혀 문제없다고 느끼는 부박한 현실이다. 서점 하나도 없는 동(洞)이 서울에만 3분의 1이 넘는다. 그러니 출판사가 살아남는 게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불경기일 때일수록 책을 읽어야 한다. 잘 나갈 때는 책 읽지 않아도 그 흐름 그냥 따라가도 잘 산다. 하지만 불경기와 위기가 닥치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어디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가장 가까운 답은 바로 책에 있다. 비싼 커피 두 잔 덜 마시면 책 한 권 살 수 있다. 그러니 사실은 최저가의 솔루션이다. 그걸 깨닫지 못하니 그나마 읽지 않던 책부터 지출을 줄인다. 책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창을 제공한다.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몇 시간 투자하면 그 책을 쓴 사람이 여러 해 공들여 쌓아온 지식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불경기일수록 사실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충고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한 칸에 두 명만 봐도 행복한 느낌이 든다. 이 행복 바이러스가 가득 퍼져야 한다. 책에 길이 있다. 헤럴드 블룸은 "제대로 된 독서는 고독이 줄 수 있는 훌륭한 기쁨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자율적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니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세상이 시끄럽다. 모두가 소리만 질러댄다.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누리는 법을 모르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출판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문을 닫는다. 종국에는 우리의 지식과 지혜의 샘도 말라버릴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영화나 드라마도 그 바탕은 책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다. 저렇게 쓰러져가는 출판사들이 결국 우리 문화의 원천을 고갈시키는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쉰 해를 훨씬 넘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출판문화상조차 작년에 슬그머니 대기업 후원이 끊어진 모양이다. 큰돈도 아닐 텐데 불경기와 경제 위기 핑계 삼아 손을 떼는 건 그만큼 우리사회가 책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와 문화가 부박하단 말인가!
출판사들도 패배의식에 빠질 때가 아니다. 불경기는 책의 기회이기도 하다. 힘들 때 책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그래도 마케팅 여력이 있는 출판사들은 부지런히 책 광고를 낸다. 그런 출판사들이 광고할 때 머리맡에 '어려울 때, 책은 가장 유용한 길을 제시하는 벗'이라는 뜻을 가진 일종의 캠페인 헤드카피를 1년 동안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그걸 보고 당장 책을 사지는 않겠지만 슬쩍 지나가는 눈길도 머릿속에 남는다. 그리고 깨달음이 느껴질 때 그 사람은 서점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건 작은 출판사들에 대한 동업자적 배려이기도 하거니와 책의 부흥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책은 영화만큼 직설적이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그래서 단맛은 덜 할지 모른다. 하지만 깊은 맛은 바로 책에서 맛볼 수 있다. 불경기 탓하며 책을 읽지 않는다면 더 힘든 삶이 기다릴 뿐이다. 불경기와 경제위기일수록 책을 읽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책에서 많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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