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윤모(52)씨의 고위공직자 성 접대 의혹 사건이 사실상 강제수사라는 새 국면에 접어듦에 따라 경찰과 검찰간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의혹 대상자 10여명에 대한 경찰의 출국금지 요청 과정에 양 기관간의 물밑 갈등 내지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선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27일 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등 의혹대상자들을 무더기로 검찰에 출국금지 요청한 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모양새를 취한 것부터 그렇다. 검찰의 몽니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출국금지가 될 경우 그간 참고인 또는 피내사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게 돼 경찰이 소환 등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다.
경찰이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씨에 대한 외곽수사만 하고 소환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검찰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내사착수 이후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을 입증하기 위한 진술과 증거확보에 주력해온 경찰이 윤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직접 조사할 경우 사건 자료 일체를 검찰에 제시하고 지휘를 받아야 할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이미 확보한 성관계 동영상의 증거능력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김 전 차관의 성접대 혐의 입증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검찰은 공개적인 내사 발표 등 경찰의 수사방식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표출하지는 않고 있다. 김 전 차관 등 검찰인사가 관여돼 있는 데다 사건 가로채기 등 거센 비판을 들었던 김광준 검사사건의 학습효과 때문에 경찰 수사를 관망하는 자세다.
하지만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김 전 차관의 실명이 언론에 거론된 배경에 경찰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고 '검찰 흠집내기' 의도를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경찰이 유리한 명분을 얻기 위해 김 전 차관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결과 성관계 동영상의 등장인물이 김 전 차관으로 추정된다는 일부 보도도 경찰의 '보이지 않은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검찰은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 전 차관 혐의 입증을 위해 강제 수사를 하는 과정에 검ㆍ경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김 전 차관 등 출국금지 요청과 관련,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수사 필요성과 범죄 혐의에 대한 상당성이 있다"고 말해 고위 공직자가 윤씨의 불법행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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