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하나로 전 세계 PC 소프트웨어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MS)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맥을 못 추는 게 하나 있다. 동영상 재생기다. 국내 시장을 장악한 익스플로어 MS워드 MS엑셀 등과 달리, 동영상 재생프로그램인 윈도미디어플레이어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토종 소프트웨어 '곰TV(곰플레이어)'때문이다. 국내점유율 60%가 넘는 곰플레이어는 미국 일본 유럽 중남미 중국 등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언어가 지원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이용자들이 메뉴를 자국어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다.
'곰플레이어 신화'의 주인공은 ㈜그래텍 창업자인 배인식(45ㆍ사진) 사장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벤처 1세대다. 그런데 그가 돌연 퇴진을 결정했다. 후임 대표(곽정욱 부사장)까지 내정했다. 회사 내부는 물론 업계에서도 그의 퇴장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8일 배 사장을 만나 사퇴이유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혹시 회사가 어려워져서 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전혀 아니다. 3년 연속 흑자를 냈고 부채도 제로다"라고 말했다. 건강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사내에 무슨 경영권 갈등이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었다.
그가 밝힌 퇴진이유는 '오너 1인에 의존하는 회사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 그는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그래텍=배인식'이라는 공식부터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이미 3년 전부터 결심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돈도 벌만큼 벌었으니까 그래텍에서 손을 떼고 다른 사업을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지만 그는 "회사에선 물러나지만 지분은 절대로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40%를 갖고 있는 지분 중 개인으로선 가장 많은 1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배 사장은 전형적인 벤처기업인이다. 국민대 금속공학과 재학 시절 소프트웨어 개발에 빠져 전국대학 컴퓨터연합서클(유니코사ㆍUNICOSA) 회장을 지냈다. 1993년 삼성전자에 입사,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을 만들었는데 이는 현 국내벤처업체 CEO들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대거 배출한 '사관학교' 역할을 했다. 삼성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그룹 전략기획실(현 미래전략실)로 발령, 소프트웨어 사업의 밑그림을 맡겼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해 직접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그는 삼성그룹을 그만 둔 이유에 대해 "서류결제에 두 달이나 걸리는 것을 보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곰TV가 탄생한 건 1999년. 이 프로그램 하나로 그래텍은 CJ로부터 20% 지분투자를 받았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만든 세계적 게임업체 미국 블리자드사의 마이크 모하임 사장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는데, 그 인연으로 모하임 사장은 스타크래프트2 게임대회의 전 세계 방송권을 그래텍에 맡기기도 했다.
과연 그가 없는 그래텍은 굴러갈 수 있을까. 배 사장은 "정밀진단을 통해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선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사업구조를 4개 부문으로 쪼개 독립채산제로 바꿨고 다음 먹거리사업까지 챙겨 놓았다"고 말했다.
그의 퇴진소식을 듣고 직원들이 강하게 만류했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올 때를 대비해, 이사할 사옥에 사무실만이라도 따로 만들어놓겠다고까지 했지만, 그는 "떠난 사람은 잊으라"며 그조차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향후 계획에 대해 카메라와 노트북만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국내를 두루 여행하겠다고 했다. 복귀가능성에 대해선 "회사가 아주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지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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