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2013회계연도 예산법안에 연방정부의 중국산 정보기술(IT) 제품 구매를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해 가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중국의 광범위한 해킹 의혹에 처음 대응 조치를 취한 것이다. 상원과 하원을 통과한 예산법은 2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됐다.
예산법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CBS방송 등은 27일(현지시간) 예산법 가운데 문제가 된 제516조항을 소개하고 미국이 중국에 일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조항은 상무부, 법무부, 항공우주국(NASA), 전미과학재단(NSF) 등이 중국 정부가 소유ㆍ운영ㆍ지원하는 기업이 생산, 제조, 조립한 IT 제품을 구입할 경우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방기구 책임자가 연방수사국(FBI)과 협의해 해당 IT 제품의 사이버스파이ㆍ파괴 위험이 없고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까지 유효하며 비군사 연방기구에게 적용된다.
예산법의 규정에 따라 미국 정부는 중국 IT 업체의 제품 구매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명분을 확보했다. 반면 레노보와 같은 중국 IT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조달 체계로 만들어지는 IT 제품의 특성상 중국산 부품에 의존하는 제3국 업체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국토안보부 출신의 안보전문가 스튜어트 베이커는 “이번 조치는 방향의 변화”라며 “미국은 상당 기간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IT 부품까지 일일이 확인해 중국산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데다 중국의 맞대응 가능성 때문에 오바마 정부가 이 조치를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중국이 맞대응 보복에 나서면 양국의 사이버 스파이 논란이 보호무역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언론들은 문제의 516조항이 이런 파장을 가져올지, 아니면 상징적 조치에 그칠지는 결국 오바마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와 관련,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규정은 인터넷 안전을 핑계로 중국 기업을 차별대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훙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중국과 미국의 상호 신뢰는 물론 경제무역 관계 발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미국은 관련 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에서 중국 군대 조직이 미국 기업들을 해킹했다는 폭로가 나오고 중국계 여성 스파이 사건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최근 양국 관계에는 어느 때보다 높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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