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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인식, 근대화 패러다임에 경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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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인식, 근대화 패러다임에 경도돼 있다”

입력
2013.03.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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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일본인들은 일본 역사와 사회의 특색을 한국ㆍ중국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서구와는 유사한 것으로 보는 담론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왔다. 그것이야말로 일본이 주변국과 역사인식을 둘러싼 대립을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ㆍ65)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28일 이 같은 담론의 중심에 "러일전쟁 직후부터 일본 학계에 등장한 일본 봉건제론과 한국ㆍ중국의 유교망국론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야지마 교수가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에 문제제기한 (창비 발행)는 책을 냈다.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 일본학계가 생산해내고 대중들은 무비판적으로 믿어온 일본사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자신의 글들을 묶었다.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에 재직 중인 미야지마 교수는 대표적인 일본인 한국사 연구자다. 조선시대 사회경제사를 전공해 중국과 한국이 14세기를 전후해 소농사회를 형성해 일찌감치 '유교적 근대'를 일궜다는 주장을 펴왔다. 서구 중심의 근대 개념으로는 동아시아를 충분히 해명할 수 없다며 '다양한 근대'를 주장한 알렉산더 우드사이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명예교수의 논지와도 통한다.

일본의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조차 이처럼 일본 근대화시기의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일본사 인식에 갇혀 있다고 지적하는 그를 이날 서울 시내에서 만났다.

-한국이나 일본의 역사를 유럽의 봉건제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서구중심주의라고 했다. 하지만 한일의 역사학자들이 그 같은 틀을 고수하는 것은 그 개념이 역사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이 있기 때문 아닌가.

"봉건제 이야기가 일본에서 나온 건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러시아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찾아나선 결과다.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가자는, 처음부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논리다. 물론 도쿠가와시대와 유럽 중세가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면도 많다. 두 사회를 비교하려면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봐야지 공통점만 찾으려 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일본의 근세를 봉건제 확립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파악하려는 일본사 연구의 주류적인 입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 시기 일본은 무사들이 무위(武威)에 의지해 평화를 유지하는 체제다."

-중국 한국이 근대화에 뒤처졌던 이유가 유교 지배체제였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달리 성리학 이념에 바탕한 체제가 당시로서는 효과적인 국가체제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한국이나 중국이 서구열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그 같은 성리학적 체제의 한계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서구가 닥쳐올 때 빨리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있다. 유교국가는 정부 규모가 작은 국가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데 그게 한국은 3년에 한 번 33명이었고 중국도 3년에 300명 정도였다. 아주 작은 정부였던 셈이다. 그리고 문(文)을 중시하고 무(武)를 소홀히 해 군사체제에도 약점이 있었다. 이런 체제가 서구 근대국가의 도전을 받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유교에 얽매여 스스로 근대화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그는 책에서 조선왕조가 주자학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였기 때문에 서양의 충격에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인식은 일본인이 한국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주장하기 시작한 담론이라고 강조한다.)

-서구열강을 모방해 일본이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간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지만, 서구를 좇아 사회체제를 빨리 변화시킨 것은 올바른 선택이지 않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사회는 긍정적인 면이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되기 전부터 정한론 같은 주장이 분출하고 있었다. 그런 두 측면을 어떻게 종합적으로 평가하느냐는 어려운 문제다. 긍정과 부정을 균형 있게 보는 것이 어려운 데 일본은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일본 역사학계의 반응은.

"지난 1월 도쿄대 고마바캠퍼스에서 일본 역사학연구회 분과인 근세사부회ㆍ서양사부회 공동 주최 심포지엄에서 토론 됐다. 젊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런 주장에 대해 일본학계는 거의 무반응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선뜻 답이 안 나온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일본 역사학계는 갈수록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근대화 같은 거대담론은 관심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 학자들이 새로운 역사인식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까지 일본 역사학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은 근대화 패러다임이다. 지금 일본의 문제점은 근대라는 시대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제 극복은 근대 자체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근대는 하나만이 아니고 각 지역에서 경험한 여러 종류의 근대가 있다. 각국의 근대는 어떤 차이가 있고 각자 어떤 장점이, 약점이 있는지를 세계적인 규모로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근대라는 패러다임을 극복할 길이 열릴 것이다."

-책에서 일본이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동안 일본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해왔는데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그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을 대신하는 시스템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 일본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목하는 혼란ㆍ혼돈된 상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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