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28일 오전 10시,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모의법정은 로스쿨생과 법조인을 꿈꾸는 대학생 100여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국내 최초로 대학 캠퍼스 내에서 열린 실제 재판을 보기 위해 온 학생들이었다. 복도까지 가득 채운 이들은 2시간 가까이 선 채로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진행된 재판은 한국전자금융㈜이 "2009, 2010년 부과된 부가가치세와 가산세를 취소해야 한다"며 마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항소심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이태종)는 원고와 피고의 변론을 듣고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청취한 뒤 1심과 같이 "가산세 부분에 대한 과세 처분만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통상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은 변론 종결 2주 정도 후 따로 선고가 이뤄진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미리 원ㆍ피고 측과 쟁점을 꼼꼼하게 정리해 변론 종결 후 10분 만에 선고를 내렸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진행 과정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원ㆍ피고 측 동의를 얻어 즉일 선고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선고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연세대 로스쿨 2학년 박세희씨는 "서울고법이 법원 밖에서 재판을 열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원ㆍ피고가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제로 진행된 것 아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 부장판사는 웃으며 "법원조직법에 근거해 재판을 연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사전에 양측 변호사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이들이 적극 환영해 진행될 수 있었다"고 답변했다. 현행 법원조직법 56조는 '법관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법원 외 장소에서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절차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도 이어졌다. 연세대 화학과 4학년 정서희씨는 "먼저 시작된 원고 측 변론을 집중해 듣다 보니 뒤이은 피고 측 변론에서 집중력이 떨어졌다"며 "원고가 항상 먼저 변론하면 당연히 피고가 불리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부장판사는 "원ㆍ피고가 동시에 변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장을 제기한 원고 측에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만약 (1심에서) 피고 측만 항소했다면, 항소심 재판에서는 피고가 먼저 변론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어 "통상의 경우 법관들은 (오늘) 이 정도 재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말해 법정에서는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부장판사는 질의응답이 끝난 후 "법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재판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캠퍼스 열린 법정' 행사를 진행했다"며 "학생들이 진지하게 방청해 너무 감사하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연세대 로스쿨 1학년 신모씨는 "책에서만 봤던 법률용어들이 실제로 법정에 활용되는 것을 볼 수 있어 신기하고 좋았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은 이날 재판 진행 성과를 분석, 관할지역 내 다른 로스쿨에서도 실제 재판을 연다는 계획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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