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공간 안에서 독자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과의 만남에 주저하지 마세요.”
시와 공간이 만났다. 여느 시화전처럼 전시장이 액자 따위로 채워진 게 아니라, 새하얀 벽면의 여백과 조명, 나무의자로만 가꿔진 아주 특별한 시 전시회 자리가 마련됐다. 시인 유희경(34)씨가 두 번째 시집 을 내며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이 소박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액자 대신 나무의자 34개와 그 위엔 시가 적힌 종이가 관객을 맞는다. 유씨는 2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인이라고 해서 시만 써야 하는 건 아니다”며 “공간이 한 권의 시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전시 작업은 특별한 제안으로 시작됐다. 대림미술관이 지난해 11월 한남동의 오래된 당구장을 개조해 각 분야의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실험적인 전시공간을 만든 뒤 유씨를 초청한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 달 반 동안 34편의 시를 새로 썼다. 시와 함께 공간도 창조해야 하는 임무도 맡았다. “나무 의자를 하나하나 구상해 조명에 맞춰 배치했죠. 시인으로서 경험할 수 없었던 공간 연출도 도전해봤어요. 큐레이터 역할이 따로 없었습니다. 의자 높이가 제각각인 건 우리 몸에 맞는 의자에 앉으면 편안하잖아요. 관객들이 아무 데나 앉아서 시를 읽고 휴식할 수 있도록 했죠.”
왜 나무를 주제로 정했는지 묻자 “나무는 시와 같은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둘의 공통점은 한 점에서 시작해 무수한 선으로 번지며 끝을 맺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해진 방향 없이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거죠.”
사실 유씨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의 편집자였다. 6년간 텍스트를 꼼꼼하게 처리해야 하는 편집자 일을 하면서도 감성으로 시를 쓰는 시인인 까닭에 괴리감이 컸다고 했다. “시를 위해서라도 짜인 판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다. 그러던 중 패션창작그룹 ‘씨와이 초이’가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먼저 ‘두 개의 그림자’라는 패션·설치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때 유씨가 이에 대한 시 한 편을 쓰면서 공간과 첫 인연을 맺었다.
“협업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모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대중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도 가능하고요. 우리 관객들이 전시를 볼 때 경직된 게 아닌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감상했으면 해요.” 6월과 9월 각각 관객과의 대화, 시 낭독회 등 다른 컨셉트의 전시도 계획 중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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