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서라도 내 앞에 데려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보고 싶다'에 나오는 사이코패스(유승호)의 대사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의 감정 및 권리를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거짓말과 변명에 능하고 충동적이며 불안정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다. 피해망상이 짙게 깔려있고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 변명들을 내세워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요즘 점점 자기 밖에 모르고 타인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중동의 설화문학으로 알려진 또는 에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샤리야르 왕이다. 그는 왕비의 불륜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왕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여자에 대한 혐오감으로 번져 비정상적인 행위를 시작한다. 매일 처녀와 혼례를 치른 후 아침에 처형시키는 엽기적인 행위를 반복한다. 왕의 이런 행동은 사이코패스보다 더욱 위험한 이상심리 행동이다.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무고한 여자들을 성적으로 유린한 후 죽이기 때문이다.
왕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대상이다. 한 인간이 일순간에 겪은 사건으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고통으로 인격도 바뀌었다. 세헤라자데는 혼례를 자청한다. 목숨을 걸고 왕과 여자들을 파멸에서 건져낼 방법을 강구해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세헤라자데는 왕과 혼례를 올린 후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에는 을 비롯해 역사, 시, 전설, 철학, 우화, 연애담, 모험담, 수수께끼 등 없는 게 없다. 매일 밤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어서 왕은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특히 세헤라자데가 밤마다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멈췄기 때문에 나머지를 듣기 위해 왕은 하루하루 처형을 미룰 수밖에 없다.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왕의 신뢰를 얻어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 그것은 치유이다. 이야기는 감정이입, 동일시, 카타르시스, 소격현상, 보편화, 통찰 등을 통해 왕이 자기를 수용하고 변화하게 했다. 왕은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위를 반성할 수 있었다. 샤리야르와 세헤라자데는 아들 셋을 낳는다.
왕의 심리 장애가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은 세헤라자데가 왕의 삶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에 따른 가장 적절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왕을 존중하고 왕의 변화를 도우려는 강한 책임의식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쾌활하고 상냥한 성격도 한몫 했다. 더불어 왕의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했던 게 신뢰감을 주고 왕과의 라포(rapport)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그녀의 헌신적인 품성과 치료자로서의 사명감을 읽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로 심각한 열등감과 반사회적 성향을 품는다. 하지만 그들은 눈빛으로 표정으로 말한다. '공격적, 냉소적, 허무적, 자포자기 인생이 아프다'고. '세헤라자데의 간호가 필요하다'고. 세헤라자데의 속 깊은 위로가 필요한 요즘이다.
황효숙 교수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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