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2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대북 정책의 방향은 대화와 신뢰에 맞춰져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남북관계가 험악해지고 있지만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당국 간 대화를 지속해 신뢰를 쌓으면서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이명박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 구상'과는 다르다. 비핵화에 발목이 잡혀 남북 간 교류 협력이 중단되고 다시 핵 문제가 어렵게 꼬이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강력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한 설득과 압박을 병행하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대북정책의 진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는 우선 국제기구와 민간단체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당국 간 대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도발 중단과 상호 존중 등 초보적 단계의 신뢰 형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적절한 시기에 북측에 제안할 예정이다. 정부는 국군포로ㆍ납북자의 귀환을 위해 북한에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과거 서독이 동독 내 정치범 송환 때 돈을 대가로 지급한 이른바 '프라이카우프'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이밖에 남북한 합의가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체계를 마련해 원칙과 투명한 절차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 개선 모델도 정립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처럼 남북 대화 채널이 본격 가동되고 상호 신뢰가 조금씩 쌓이면 북핵 문제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류 장관은 "남북대화가 진행되다 보면 여러 가지 어젠다를 다루게 될 것"이라며 "그 중에는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북핵 문제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는 경우 정부는 북한의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방침이다.
정부는 다만 북한과의 대화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대화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남북 간 교류협력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려면 5ㆍ24조치를 해제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더라도 북측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은 첫 단추부터 헝클어질 우려가 있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당국 간 대화, 이산가족 상봉 제안 등도 이명박정부에서 이미 꺼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카드여서 박근혜정부의 새로운 제안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북한은 2011년 2월 남북 군사회담 실무접촉 이후 당국 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무시하고 있다. 지난 5년 간 대북 인도적 지원 규모가 2,575억원에 달했지만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호응하지 않거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하면 신뢰 프로세스 가동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따라서 점진적으로 차분하게 길게 호흡하면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