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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못드린 꽃 영전에 꽉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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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못드린 꽃 영전에 꽉 채우고…"

입력
2013.03.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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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27일 0시 45분. 한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졌다.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김복지(52)씨는 노모(89)가 숨지기 전 6개월 동안의 모습을 모래시계의 모래가 빠져나가는 듯 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엄마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막내딸인 김씨의 눈에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덫에 걸린 어린 동물처럼 애처로웠다.

김씨는 엄마의 삶을 더듬었다. 말단 공무원의 아내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남편과 여섯 자식의 끼니를 위해 좌판을 벌이기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올 법도 하지만 엄마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손자를, 자식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 보냈다. 이혼한 딸이 외손주를 안은 채 대문을 열고 들어올 땐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터. 딸의 유방암 판정 소식 앞에선 또 자식이 당신보다 먼저 앞설까 하는 생각에 "사는 게 무섭다"고 털어놨다.

"고등어 한 마리보다 국화 한 다발이 좋다"고 하던 엄마에게 생전 꽃 한 다발 안기지 못한 죄송함에 장례식장이 꽉 차도록 꽃을 채웠다. 그리곤 꽃 무덤에 고이 잠든 엄마 앞에서 김씨는 목놓아 울었다. 김씨는 "지극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엄마를 보내드리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의 사연은 서울 신촌 연세장례식장에서 발간한 유가족 수기 모음집 '슬픔 없는 이별이 어디 있으랴!'에 담겼다. 지난해 6월 이 장례식장을 이용한 유가족들과 장례식장 및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수기 공모전을 열어 수상작 등 51편을 엮었다.

김씨의 수기는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김씨는 29일 연세장례식장에서 열리는 발간식에서 수기 일부를 낭독할 예정이다.

연세장례식장은 2008년 신축 이후 추구해 온 '문화 장례식장'의 하나로 수기 모음집 발간을 기획했다. 국내 장례식장 중에서 수기집 발간은 처음이다. 장례식장은 이 수기집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휴게시설 등에 비치할 계획이다. 연세장례식장의 서원건 사무장은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방암으로 숨진 언니의 장례를 치른 21일 수상 및 수기집 발간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마치 엄마한테 연락이 온 것 같았다. 언니보다 늦게 갈까 봐 두려워 하던 엄마 였는데…"라며 울먹였다.

김씨는 "이름 없는 소시민이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의 삶에는 감동이 있을 것"이라며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건 유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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