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정부조직개편 협상지연과 장ㆍ차관들에 대한 검증실패로 박근혜정부의 실질적 출범은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늦었다. 시작이 늦은 만큼 정상가동에 속도라도 내야 하지만, 지금 정부 내 곳곳에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대통령선거 공약 또는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놓고 예산당국과 사업부처의 이견은 점점 더 커지는 상황. 여기에 정부조직개편 이후 세부적인 업무관장을 둘러싸고 부처간 밥그릇싸움과 힘겨루기도 갈수록 팽팽해지고 있다. 또 권한을 독점하려는 부처와 이를 어떻게든 나눠가지려는 부처간 대결도 점입가경이다. 임기 5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정권 초에, 늑장 출범도 모자라 파열음까지 커짐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정책수행 능력과 효율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우리나라가 기왕에 맺었던 자유무역협정(FTA)들에 대해 "기준 모델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FTA 등 통상업무는 그 동안 외교부(옛 외교통상부)가 맡아 오다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산업부로 이관됐는데, 윤 장관의 발언은 사실상 외교부를 겨냥한 것이어서 정부 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윤 장관은 27일 경총포럼 강연에서 "우리나라가 FTA를 너무 빨리 동시다발적으로 체결하다 보니 협상할 때 기준이 되는 모델을 가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준이 없으니까 (FTA의) 각 케이스마다 형태가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장관은 특히 "BIT(양자간 투자협정)든 FTA든 ISD(투자자ㆍ국가간 소송), 원산지, 비관세 장벽, 서비스부문 등 세부 규범에서 우리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고 거듭 반문했다. 그는 "협상하는 사람이 기준에 의한 텍스트를 갖고 이를 충분히 숙지하면 상대방이 무슨 요구를 한다 해도 '이것은 어떤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협상과정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면서 "모르고 급하니까 막 하다 보면 뭐가 들어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그 동안 FTA가 기준과 원칙 없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음을 지적한 것. 그러다 보니 때로는 국익에 반하는 조항까지 반영되고 결국 국내적 반발도 커지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던, 윤 장관의 이날 언급은 외교부를 겨냥한 게 됐다. 지금까지 미국 유럽연합(EU) 등 우리나라의 모든 FTA는 외교부 산하 통상교섭본부가 협상테이블에 앉았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공식반응을 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FTA모범국으로 평가 받는다. 대체 어느 나라와 맺은 FTA에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줬으면 좋겠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상업무이관으로 기존에 FTA협상을 담당했던 많은 외교부 인력이 산업부로 옮겨갔는데 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장관의 발언이 파장을 낳자 산업부 관계자는 "급변하는 세계 통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통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지 그간 애썼던 외교부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 정부관계자는 "통상기능이 산업부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선 외교부가 간여하고 있다"며 "양 부처가 삐걱거리면 그만큼 통상정책의 효율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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