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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자존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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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자존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입력
2013.03.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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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은 쉽지만 사실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선 집착하지 않다간 생계도 위험해질 확률이 높을뿐더러 생계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자존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 빈곤함 속에서 자존감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면 쉬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삶을 실천한다고 봐야 할 사회운동가들의 모습을 보면 이 문제가 더 명확히 보인다. 자본주의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역할모델에서 꽤 벗어나 있는 직군으로는 종교인도 있겠지만, 종교인들과는 달리 사회운동가들은 신자들의 '존경'이라는 상징자본도 가지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종교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존경'을 받을 만한 명망을 쌓지 못한 운동가들은 파행의 유혹에 빠진다.

중년의 선배 운동가들이 단체의 공금을 횡령하는 문제에 오래도록 천착한 한 지인은 '운동권'들이 단체의 공금을 횡령하는 원인으로, 혹은 공금을 횡령해서 하는 일들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부류는 후배들에게 비싼 밥을 사주는 사람이다. 이런 이들은 단체 상근비로는 견적이 안 나오는 레벨의 식당에 들어가 후배들에게 선심을 베푼다고 한다. 둘째 부류는 특이한 취미생활을 하는 부류다. 이런 이들은 주중에는 활동가지만 주말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공금을 횡령하여 다섯 종류의 카메라를 산 활동가도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부류는 룸싸롱에 가는 이들이다. 이들도 대체로 혼자 가는 게 아니라 후배들을 데리고 간다. 국가보조금을 받던 단체에서 수억 원을 횡령해 룸싸롱을 가다 징역형까지 산 활동가도 있다. 횡령문제를 많이 접한 어느 회계사에 따르면, 횡령주체는 단체 구성원들을 횡령금의 수혜자로 만들면서 심리적으로 정당화 기제를 만들고 적발되더라도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들은 설령 회계를 살피던 후배들에게 적발되더라도 운동사회에 널리 회람되지 않는다. 그들이 돈을 쓴 방식이 실용적이지도 않고 처연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운동권들은 "나 같으면 저축하겠다"고 농을 하기도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나는 세 부류 모두 자존감의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젊어서는 사회변혁의 대의만으로도 자존감을 채울 수 있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낮아지는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그들은 후배들에게 베풀며 으스대거나, 자본주의 사회를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중산층들이나 즐기는 취미생활을 하거나, 성매매업소의 소비자가 된다.

물론 어떤 경우에나 예외는 존재하고 존경 받을 만한 존경인들 만큼이나 수양이 깊은 운동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 꽤 많은 중년남성들이 젊은 여성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 열심인 세태도 그들의 성욕보다는 자존감의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어떤 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은 물질적 빈곤함에서 나온 자존감 결핍을, 그 '판'에서의 자신의 명망을 활용해 젊은 여성들에게 지분대는 것으로 보상받곤 한다. 그 연배의 회사원들처럼 '업소'에 가지 않는 대신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주변 여성들에게 집적대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이들의 정신세계는 역설적으로 그러는 이들의 것보다도 황폐한 경우가 많았다. 돈을 많이 번다 해서 정신이 건강한 건 아니지만, 궁핍하면 정신건강은 분명하게 나빠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것도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을 위하는 일과는 매우 다를 수 있다. 드라마에 나오는 '순결한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고, 황폐한 정신세계를 가진 '을'의 문제를 들어야만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운동이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글쟁이로서,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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