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상품의 인기를 가늠하는 순위나 평점은 얼마나 믿을 만할까. TV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는 제각각 다르고, 포털 사이트의 영화 평점은 작품의 완성도나 오락성을 떠나 뒤죽박죽이다. 미국의 빌보드나 일본의 오리콘처럼 공신력 있는 대중음악 차트도, 영화 전문 사이트 IMDB나 야후 무비스, 로튼토마토닷컴처럼 신뢰도 높은 영화 평점을 제공하는 사이트도 국내엔 없다. 최근엔 지상파 3사의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순위제를 부활하면서 가요 순위의 공정성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고, 포털사이트 관객 평점을 둘러싼 해묵은 '조작 논란'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MBC '쇼! 음악중심'과 SBS '인기가요'는 각각 2006년, 지난해 7월 '가요 차트의 신뢰도 추락'과 '출연 가수들의 다양화' 등을 이유로 순위제를 폐지했다. '쇼! 음악중심' 제작진은 4월 6일 방송부터 시작하는 순위제와 관련해 "동영상 조회수, 음원ㆍ음반 판매 점수, 방송 출연 점수 등을 합해 순위를 매길 것"이라며 "1위를 결정하는 실시간 문자 투표는 1인 다중투표 방식을 적용해 팬들 사이의 경쟁 등 부작용을 막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공정성 논란은 여전하다. 가요기획사 A 대표는 "문자 투표 자체가 팬덤이 강한 아이돌 그룹에 유리한 요소"라며 "방송사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요 프로그램 순위는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방송사를 통틀어 5개이고, 음원 사이트 차트까지 포함하면 10개가 넘는다. 순위는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지난주 이하이의 '이츠 오버'는 SBS '인기가요'와 엠넷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했지만 KBS '뮤직뱅크'에선 8위에 그쳤다. SBS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인 탓에 KBS의 방송 점수가 0점이어서 총점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공정성과는 거리가 있는 차트다.
가요 프로그램마다 순위가 다른 건 집계 방식이 서로 달라서다. 음원ㆍ음반판매, 방송횟수, SNS 인기, 동영상 조회수, 사전투표, 실시간 문자투표 등 서로 다른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음원 순위는 '알바(아르바이트)'를 동원해 반복 청취할 경우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식 허가를 받고 2010년 출범한 가온차트도 아직까지 '국가 공인'에 걸맞은 위치에 오르진 못 했다.
포털 사이트의 영화 평점은 '평점 놀이'와 '알바 시비'로 얼룩진 지 오래다. 누리꾼들의 '평점 놀이'로 유명한 이동준, 스티븐 시걸 주연의 2004년 개봉작 '클레멘타인'은 졸작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평점이 27일 현재 9.27점이다. 전국 10만명의 관객도 모으지 못했지만, 평점을 준 사람만 1만 400여명이다. 김보성,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주연의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은 26일까지 고작 5,9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네이버 관객 평점은 9.41점. 기자ㆍ평론가의 평점 2.94점과는 대조적인 수치다.
미국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 '지슬'은 독립영화로서 이례적인 흥행 성공에도 6.03점에 불과하다. '선동' '빨갱이' 같은 단어와 함께 1점을 준 사람들의 '평점 테러' 때문이다.
포털사이트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민이 깊다. NHN의 한 관계자는 "반복해서 평점을 올리는 사용자는 걸러내고 모니터 요원들이 조작을 막고 있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삭제할 수는 없다"며 "평점 서비스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4월부터 부분 개편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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