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은 2000년 이전만 해도 중요 이슈가 아니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의 관심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심리에 쏠리고 있다. 26, 27일(현지시간) 이뤄진 캘리포니아주 동성결혼금지법과 연방 결혼보호법 위헌심리는 짧은 기간에 세계의 이슈로 진화한 동성애 문제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심리가 먼저 진행된 것은 동성결혼금지법이었다. 주민발의와 투표를 거쳐 2008년 입법화한 동성결혼금지법은 이후 연방법원 1, 2심에 의해 위헌결정이 난 상태다.
26일 존 로버츠 대법원장 주재로 90분 동안 진행된 심리에서 대법관들은 자신의 이념을 떠나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절반 이상의 대법관이 위헌 판단의 적기가 아니라고 하거나 상고 이유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기각 또는 각하를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경우 하급심의 위헌 결정이 유지돼 동성결혼금지법은 폐기된다. 대법원 결정은 6월께 나올 전망이다.
대법관 중 진보 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동성결혼이 각 주(州)와 사회에서 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은 "휴대폰이나 인터넷보다도 역사가 짧은 이 제도를 평가해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건 무리"라고 난감해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중도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동성결혼의 사회적 파장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며 이를 판단할 사회적 자료도 불충분하다"면서 "왜 우리(대법관들)를 항해지도가 없는 바다로 밀어 넣고 사건의 결론을 내리도록 하느냐"고 소송 대리인들에게 따졌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역사는 전통적 결혼의 편에 서 있다"고 했으며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헌법 제정 당시 동성결혼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기존 결혼관을 강조했다. 반면 진보성향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결혼 개념에 임신이 포함돼 있다면 55세 이상의 남녀결혼 역시 금지시켜야 하느냐"고 물었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기각 또는 각하해 판단을 보류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 진영의 비난을 피하는 정치적 묘수일 수 있다. 위헌결정을 하면 사법부가 입법의 영역에 간섭했다는 지적이, 합헌결정을 하면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법정 밖에서는 동성결혼 찬성자와 반대자들이 세를 과시하며 시위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27일 연방 결혼보호법의 위헌 심리를 앞두고 1996년 법에 서명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부부에 대한 연방법상 혜택을 규정한 이 법은 결혼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는 곳은 현재 뉴욕, 매사추세츠 등 9개 주와 수도 워싱턴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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