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선 '창조를 창조하는 것'이 유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핵심적인 국정기조로 제시하면서다. 정부 부처는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액션플랜을 짜느라 여념이 없고, 재계에서도 창조경제에 부응하는 비전을 찾느라 바쁘다.
하지만 정작 경제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창조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중소벤처기업인들이 느끼는 현실은 여전히 '창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25일 본보가 '기술 중기 울리는 구태 공기업'을 보도한 직후 벌어진 풍경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가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에어컨 배관 신기술을 개발했지만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용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례를 소개하자, LH는 문제 해결방안을 찾기 보다는 해당 업체에 "왜 시끄럽게 해서 문제를 키우냐"고 따진 뒤 "중소기업청의 인증이 필요하다"며 책임전가에만 매달렸다. 이 업체 관계자는 "그나마 LH와 해오던 거래마저 끊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 이 업체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보도가 나가자 유사한 사례라는 제보가 쏟아졌다. 새로운 도로 공법을 개발했다는 한 업체 대표는 "골재가 부족하고 예산이 부족해 시급한 도로건설도 제 때 하지 못하는 현실임에도 공공기관들은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새 공법에 대한 검토를 외면하기만 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신기술 수출에 도움을 얻고자 정부 민원포털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더니 중소기업청의 직원으로부터 "돈 많이 받고 외국에 기술을 파세요"라는 무성의한 답을 들어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물론 신기술이라고 해서 검증도 없이 받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최근 몇 년 사이 공공조달시장에서의 중소벤처기업 진입장벽이 많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구태의연한 행정과 오만한 태도는 대기업의 횡포 못지 않게 심각한 수준이다. 창조경제가 실현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존중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창조의 꽃이 필 리 없다. 공공기관의 이런 구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창조경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뜬구름 잡는 구호에 그칠 것이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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