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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의혹만 키워놓고 물증 없어 '헛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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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의혹만 키워놓고 물증 없어 '헛바퀴'

입력
2013.03.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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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 성 접대 의혹 사건이 점점 꼬이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은 무엇보다 경찰이 물증확보를 하지 못한 탓이다. 고위공직자 섹스스캔들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 사건의 기본 성격은 뇌물사건이다. 건설업자 윤모(52)씨가 공사수주와 인허가과정에서의 특혜나 각종 비리 무마를 대가로 성 접대를 포함한 향응이나 금품을 제공했을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증확보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경찰은 그럴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상당한 시간을 들인 물증확보와 핵심 피의자 검거를 통해 고위공무원과 경찰 수뇌부들을 줄줄이 사법처리 했던 2010년 함바집 비리사건과는 180도 다른 전개다.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과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사건의 발단은 50대 여성사업가 K씨가 지난해 11월 윤씨를 성폭행과 공갈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K씨는 지인들을 통해 윤씨의 고위공직자 성 접대 사실과 동영상의 존재를 말하기 시작했고, 이게 경찰 안테나에 걸렸다. 이 과정에 김학의 대전고검장이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되자 윤씨의 고위공직자 성 접대 의혹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설로 나돌던 고위공직자 성 접대 의혹이 이달 초 언론에 보도됐고, 청와대에 첩보를 올렸던 경찰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물증을 갖지 못했던 경찰은 섣불리 내사사실을 발표하고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책임을 맡으면서 의혹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경찰은 K씨를 통해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2분여 분량의 성관계 동영상을 확보했고, 성 접대를 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 C씨로부터 "김 전 차관이 맞다"는 진술도 받았다.

이 과정에 혐의가 입증도 되지 않은 김 전 차관의 실명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결국 낙마하는 사태가 빚어져 성 접대 의혹은 더욱 불이 붙었다. 동영상 CD가 7장이나 된다는 말이 나왔고, 성접대 리스트까지 나도는 상황이어서 "다음은 누구냐"는 게 관심사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국민적 관심과 기대치에서 한참 뒤처져 있었다. 부담을 느낀 경찰은 수사 인력을 두 배로 늘려 윤씨의 공사수주 및 형사입건 처리과정, 금융거래 내역, 통화내역 등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등 전방위 수사에 나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물증확보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당사자인 윤씨가 또 다른 성 접대 동영상을 갖고 있거나 증거인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도 수사 6일이 지나도록 그를 소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일 내사가 수사로 전환돼 출국금지가 된 윤씨는 자동적으로 피의자 신분이 됐지만 "윤씨는 범죄혐의를 확보하고 가장 나중에 조사한다"는 게 경찰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영장을 신청하기 위해 수사서류를 몽땅 검찰에 넘기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성 접대의 물증으로 확보했던 성관계 동영상에서 김 전 차관을 확증하지 못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결과까지 나와 성 접대 의혹사건을 보는 시선이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는 실정이다.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실제 성 접대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권이나 청탁 등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수사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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