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남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졌던 전시회'인공정원'. 전시회 내내 사운드디자이너 권병준(42) 씨가 만들어 낸 신비한 소리가 울렸다. 컴퓨터 회로의 통제를 받는 스피커에서는 실내 조명의 변화에 맞춰 각종 전자적 음향들이 수시로 변신, 새 청각적 경험의 세계로 인도했다. 최근의 사회적 이슈인 층간 소음을 해결할 방안으로 제시된 화이트 노이즈도 그 중 하나였다. "아기가 뱃속에서 듣게 되는 큰 소음과도 흡사한 소리죠."
통상적인 의미를 따른다면 그는 '연주'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터치 신디사이저 등의 전자 회로 기판에 의해 생성되는 음향을 노트북으로'제어'하는 것이 그의 연주 행위다. "건반상의 12음과는 전혀 무관한 음향, 이를테면 소음도 저의 재료죠." 컴퓨터와 전기 장치를 응용, 현실에 없는 소리를 만들어 각종 양식의 무대와 결합시킨다.
2005년 한국인 최초로 네덜란드 헤이그왕립음악원에 유학, 슈타임(Steimㆍ네덜란드 전자 악기 연구 개발 스튜디오)에서 예술과 과학(Art & Science)이란 주제에 파고드는 것으로 그는 신지평에 발을 디뎠다. 1980년대 혁신적 전기 장치 개발에서 세계 최고로 군림, 노이즈 음악의 흐름을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곳에서 그는 3년을 보냈다. "직원 자격의 하드웨어 엔지니어였어요." 몸의 움직임을 감지해 신호로 변환시키는 센서 인터페이스(sensor interface), 음향과 영상을 화시키는 실시간 비디오 프로세싱 등을 습득하기 위해 그는 잠도 아꼈다.
그 결과 '천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돌아가지 말고 학생을 가르치라는 제의까지 받았으나 지독한 향수병 앞에서는 어쩔 도리 없었다. "당시 제가 원하던 것들이 한국에 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유학전에는 삐삐롱스타킹 등 권위를 노골적으로 야유하던 펑크록 밴드의 멤버였던 그의 위상은 현재 역전됐다. 지금 그는 서강대영상대학원 겸임 교수다. 소리에 대한 전자 음악적 접근, 영상과의 매개, 새 방식의 컴퓨터와 상호 작용 등 세 가지 테마가 현재 그의 앞에 놓인 숙제다.
그의 음악은 영상, 무대 예술 등 타장르와 현장에서 만날 때 가장 빛난다. "아무 준비 없이 악기 특성에 맞춰 그때 그때 감응하는 것이 나의 연주예요. 즉흥의 비율이 90%죠."그는 "작곡가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동양의 음악적 전통의 연장선상"이라며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말했다. 곧 완벽한 즉흥의 세계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