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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서울시,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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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서울시,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 추진

입력
2013.03.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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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판매 품목을 제한키로 한 서울시 방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시가 권고한 '대형마트ㆍ기업형 슈퍼마켓(SSM) 판매조정 가능품목'은 총 51개로, 배추 오이 마늘 두부 계란 갈치 꽁치 고등어 등 단골 소비 물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런 결정에 대한 반응은 확연히 갈린다. 재래 시장과 소상공인들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환영했지만, 대형마트와 SSM 측은 "사실상 강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엔 "서울시로부터 연구용역을 의뢰 받았던 중소기업학회가 시 지침대로 결과를 내놨다"는 '사전 지시설"까지 제기돼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 시각도 다르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판매 제한 보다는 구매협동조합이나 공동물류센터, 공동수배송체제를 만들어 영세 소매점의 경쟁력을 높여 생존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품목제한 조치를 반대한다는 얘기다. 반면 성춘일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SSM에서 일부 품목을 구매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나 동네 상권 살리려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대형마트가 저렴한 가격으로 유도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경우 자유경쟁이 더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선택권 제약^경쟁환경 저해… 유통효율 개선과 거꾸로 가는 조치"

● 반대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규제한 데 이어 서울시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각종 채소와 신선ㆍ조리식품, 축산물, 수산물, 기호식품 등 국민들 식탁에 필수적인 51개 품목을 판매할 수 없게 했다. 아마도 시민들의 표로 선출된 시의원들이 시장골목의 무수한 상인들 표를 의식해 관철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의사결정자인 시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인들의 힘을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이런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 골목상권 보호라는 표면적인 목적은 훌륭하고 완벽하게 달성할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대형마트 가는 일이 줄어들고, 결국 대형마트는 문을 닫게 돼 대형마트가 없었던 1993년 이전 상태로 회귀될 것이 눈에 선하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시장 개입이 농산물 유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소비자와 생산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마트의 주요 농축산물 판매 규제는 유통의 가장 기초인 소비자의 원스톱 쇼핑, 즉 편리한 장보기를 위한 판매점의 상품구색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소비자 주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행정조치다. 유통의 기본원칙을 근본부터 깨는 것이다. 유통교과서를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소비자는 선호가 다양하여 똑같은 배추라도 백화점 매장에서 유기농 배추를 기꺼이 몇 배 비싸게 사는 고급 선호 소비자도 있고, 할인점이나 재래시장에 가서 싼 배추를 사고 싶은 소비자도, 심지어 장보러 멀리 가기 귀찮아 집 앞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에서 좀 비싸더라도 기꺼이 사는 소비자도 있다. 대형마트의 판매 규제는 소매유통경로를 제한해 소비자들의 구매처 선택권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고, 유통경로간 경쟁환경도 제약하여 유통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건전한 경쟁환경 조성'이라는 유통개선 방향과 정면 배치된다.

또한 95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문을 연 전국 400여개 소비지 대형마트와 SSM은 이들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도매시장 중도매인과 전국의 농산물 산지유통시설, 생산자조직에서 농산물을 신중하게 선별 포장해서 납품하는 중요한 판로로 자리잡고 확대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를 규제하여 바이어들의 구매가 완전히 끊긴다면 지금까지와 달리 도매시장이나 재래시장 식료품점 등에 판매해야 하는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한다. 대량 납품하던 판매규모화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여 많은 비용을 들여 만든 300여개의 현대적인 산지유통시설들이 이들에 맞추어 선별 포장하던 것을 포기하고 판로를 도매시장이나 영세소매점들로 전환해야 한다. 생산자들의 판매경로를 다양화하여 판매경로간 경쟁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유통개선에 정면 배치되는 조치다.

그러면 대형마트 때문에 재래시장과 영세한 골목상권을 이대로 몰락시킬 것인가 하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아니다. 농축산물 유통개선은 중간유통마진이 평균 44%, 채소 71%, 과일 50%, 축산물 46%로 높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유통마진을 잘 뜯어보면 전체 유통마진의 62%, 축산물은 81%가 소매단계에서 발생하고 있어 오히려 소매단계 유통개선이 핵심이다. 소매단계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경로를 다양화해서 경쟁여건이 형성돼야 소매점포들이 유통마진을 줄이는 노력을 할 것이다. 대형마트는 산지 직거래를 확대하고 물류비용을 줄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물론 대형마트도 과다한 유통이윤을 취하지 않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강한 경쟁상대인 대형마트의 영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영세 소매점들의 경쟁력을 키워 차별화하고 틈새시장 역할을 충실히 하여 나름 생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세 소매점들의 구매경쟁력을 높이도록 구매협동조합을 육성한다든지 공동물류센터를 만들어 저장, 포장 비용을 줄이고, 공동수배송체제를 만들어 운송비용도 줄여야 한다. 저온저장고를 지원해 감모비용을 줄이고 신선도를 유지해 제 값 받고 소비자에게 팔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소매단계의 유통마진을 줄이고, 건전한 경쟁환경을 만들어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 구매선택 폭을 넓혀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길이다. 유통개선의 요체이다.

"동네상권 살리려면 불가피한 측면… 51개 품목도 강제성 없는 권고안일 뿐"

● 찬성성춘일 변호사

서울시가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에서 판매를 조정할 수 있는 51개 생활 품목을 선정한 것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발표한 51개의 판매조정 가능품목에 대한 오해부터 먼저 풀어야 할 것 같다.

서울시의 51개 판매조정 가능품목이 강제성이 있는 법률이나 조례가 아니라 권고안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판매조정 가능품목은 법률이나 조례가 아니므로 서울시의 이번 발표만으로 당장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51개 품목의 판매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유통산업통계집'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전국에 대형마트는 437개가 있고,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서 진출한 SSM은 980개나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몇 년 이내 골목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또 도시 빈민 증가로 인한 계층간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경기침제로 힘든 우리나라 경제에 더욱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서울시는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SSM, 중소상인들이 각자가 판매할 유통물품의 종류, 판매 수량, 영업시간 등을 서로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법적인 근거나 기준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협의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교섭능력이 없는 중소상인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협의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한국중소기업학회에 실태 연구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전통시장의 경우 야채, 과일, 신선식품, 곡물, 수산물, 정육이 주로 많이 팔리고, 동네 슈퍼마켓은 담배, 주류, 음료, 스낵류 등이 주로 팔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지난해 12월 서울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대형마트 및 SSM의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한다'는 응답(38.4%)이 '반대한다'는 응답(36.0%)보다 다소 많게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구매빈도, 중소점포의 매출비중, 소비자의 구매편의성, 상품신뢰성, 가격 경쟁력 등을 고려하여 소비자의 구매 불편을 최소화하는 51개 품목을 선정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 구상에 따르면 앞으로 대형마트, SSM, 중소상인들은 51개 품목 안에서 서로 협의하고 조정하여 각자의 상권을 존중하는 최선의 상황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전통시장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는 전통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야채, 과일, 신선식품, 곡물, 수산물, 정육 등의 판매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슈퍼마켓이 많은 곳에 위치한 SSM은 동네슈퍼에서 자주 팔리는 담배, 주류, 음료, 스낵류 등의 판매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와 SSM에서 일부 품목을 구매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나, 언론의 보도처럼 극단적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불편이라 할 것이다.

자본력이 있는 대형마트들은 입점 초기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했지만 주변 상권이 무너진 후 쇼핑 장소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없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때부터 소비자들은 아이러니하게 대형마트가 정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히려 자유경쟁의 구도마저 깨어진다.

대형마트는 많은 교통 혼잡을 야기하고, 도심지 내부 중소상인의 상권을 파괴하는 위험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도심지 한복판 입점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도시 외곽에 있더라도 대형마트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까닭에 독일에서는 '상점 영업시간 제한법'을, 영국에서는 '일요일 거래법'을 둬 대형마트의 주말 영업을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 포르투갈 등도 영업시간 제한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스웨덴은 판매 품목마저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의 51개 판매조정 가능품목은 慊낮?연구조사, 소비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마련된 대형마트, SSM, 중소상인들 간의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인 것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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