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 서양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고, 혹자는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는 식사를 즐기겠다'고 했고, 혹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러 생활에 빠져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 질문은 지구 멸망에 대한 다소 추상적이며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서 그런지 누구나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병원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고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어떠할까? 과연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접했을 때의 그 희망 사항들이 머리에 떠 올려질까?
옛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시한부 판정이 나오면 당사자에게는 숨기고 그 가족들에게만 살짝 알려주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료진이 환자에게 그 사실을 직접 알려주어서 마지막 준비를 할 수 있게 권유하는데 이렇듯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면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내가 죽고 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 것인가?'
'과연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었나?'
'아직 결혼도 못했고 자식도 없는데 벌써 죽는다니...'
등등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할 것이다.
대부분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치료 받는 과정을 밟아나가지만 간혹, 초연(超然)한 분들은 그동안 하지 못했었던 취미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여행을 가는 등 일상생활 그 자체에 대한 소소한 기쁨과 감사를 죽음 직전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가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모 기업에서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미리 유서(遺書)를 써보는 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참가했으나 유서를 써나가다 보니 어느새 웃음기가 싹 가시고 잠시 후 행사장이 온통 눈물 바다가 돼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남은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그동안 살아온 날에 대한 감회가 뒤섞여서 그랬으리라.
역술가인 필자의 시각으로 볼 때는 위의 경우에 해당되는 분들은 정말 복을 많이 받은 분들에 해당된다고 본다. 인간을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생(生)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死)을 맞이하는데 특히 사람의 경우는 미리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죽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따라, 위 와 같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경우나 미리 유서를 써보며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가지게 되는 경우라면 삶에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되니 결과적으로는 갑자기 죽음을 맞는 분에 비해서는 복(福)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죽음을 맞는 경우와 준비된 죽음을 맞는 경우가 어떻게 차이 나는지 잘 설명해주는 어느 기업가의 사례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돈이 많은 기업가였는데 그는 보통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친근한 이미지였으나 실상 속으로는 오직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해외에서 큰 돈도 벌었고 사회적으로도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으나 최근 꿈자리가 유달리 뒤숭숭하다며 필자를 찾아 왔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 꿈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왔다.
필자는 "3년도 안 남았습니다. 건강도 이상 없고 사회적 지위나 명예도 이상 없지만 3년내 급사(急死) 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리 준비하셔야겠습니다" 그의 사주를 면밀하게 본 후, 꿈을 근간으로 작괘하니 산화비(山火賁)가 나왔고 기문국으로 보니 3년내 급사(急死)이긴 하나 자연사(自然死) 하는 것으로 나왔기에 주저 없이 위와 같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하지만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는데 평소 야망이 큰 그로서는 필자의 이 같은 말에 대해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이 후 그로부터 몇 차례 전화가 왔었는데 그때마다 필자는 "돈도 좋지만 어려운 이를 돕거나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이나 다녀 오시지요" 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지, 신규 계약 수주는 따 낼 수 있는 지만 물었다.
이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잊고 있었으나 나중에 그에 대해 듣기로는 큰 사업을 준비만하다 시작도 못해보고 그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남아 있는 가족들은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놓고 서로 앙숙이 되어 가고 있었고, 자식이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이자 남편에 대한 사랑이나 애착은 눈꼽만큼도 없었고 오로지 돈으로만 바라보는 대상이라 돌아가신 분에 대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돌아가신 분은 대학 시절 기타리스트로 조그마한 아마추어 록밴드를 결성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언젠가 시간이 나면 다시 록밴드를 결성해서 열정적으로 밴드 활동을 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바쁜 기업가이자 사회적 위신도 있는 관계로 그러한 활동은 여의치가 않았을 것이다. 그 분의 속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가슴 속 깊이 가장 큰 한(恨)으로 남은 것은 아마도 기타 연주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을까 한다.
필자는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감명시에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나 근거없이 사람이 운명할 시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닌데 사람의 운명 시기에 대해 필자가 설령 맞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리 쓰는 유서'와 같이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가급적 운명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담담히 말하는 편인데 죽음과 관련하여 겁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미리 준비하는 마음 정도라도 가지기를 바라는 의미이니 그것이 오히려 삶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스피노자는 죽기 전에 사과나무를 심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경우는 단 하루만 시간이 주어지나, 다행스럽게도 하루가 아닌 1년, 혹은 10년, 20년, 30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경우라면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되는지 한번 고민해 볼 필요는 있겠다.
상담시에 장수(長壽) 여부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들 하신다. 그러면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후회 없이 사는지가 더 중요하지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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