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를 개혁하겠다고 나서면서 지주회장의 '제왕적 권력'을 제한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 마련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5일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일일이 업무지시까지 하는 행태를 뜯어고치는 게 이번 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이르면 다음달 말까지 금융계와 학계, 시민단체 인사를 포함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신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정말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철저히 바꾸겠다"고 작심하고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우리 금융환경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특히 금융지주 회장이 마치 1인 지배 기업처럼 제왕적 권한을 갖게 된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행 금융지주사법 시행령에는 금융지주사가 자회사에 대해 ▦사업목표 부여와 사업계획 승인 ▲경영성과 평가와 보상 결정 ▲지배구조 결정 ▲업무와 재산상태 검사 ▲내부통제와 위험관리 등 개입할 수 있는 업무영역을 제한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규정일 뿐 실제 금융지주 회장은 계열사의 모든 업무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형식상으로는 자회사 업무에 대해 '권고'하는 방식이지만, 현장에서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자회사 인사는 물론이고 세세한 상품 개발과 실적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다. 모 은행 관계자는 "인사철마다 지점장 승진을 위해 지주 회장에 줄을 대려는 사람이 많다"며 "직원들의 근로조건도 계열사 별로 처지에 맞춰 정해져야 하는데 사실상 회장이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점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회장의 권고는 대부분 구두로 이뤄지고, 정작 실행은 자회사 사장을 통해 진행되는 구조가 고착화 됐기 때문이다. 최근 'ISS 보고서 파문'으로 대표되는 KB금융 내분 사태의 경우를 보면 어윤대 회장의 최측근인 박동창 전략담당 부사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봉합됐다. 어 회장이 "나는 몰랐다"며 박 부사장을 해임했고, ISS가 선임 반대를 권고했던 사외이사들은 주총에서 선임된 것으로 어정쩡하게 정리된 것이다. 최고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지주사 이사회마저 제 역할을 못하고 '거수기'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이유다. 이런 사례는 KB금융뿐 아니다.
금융위는 이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모든 지시는 문서로 하도록 할 방침인데, 금융권은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2011년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흐지부지됐다"며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금융지주사 문제의 개혁이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님을 내비쳤다. 그는 또 "현재로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진한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에게 거취를 빨리 정하라는 새 정부의 메시지 정도로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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